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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 타이치로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뉴스에디터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뉴스에디터
세월호 2년, 선체인양 후에도 해야 할 일이

세월호 2년, 선체인양 후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사고로부터 5년이 지날 무렵, 그 사고를 세상 모두가 빠른 속도로 잊어버려 가고 있다고 느꼈죠. 이러다가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되어버릴까 너무 두려웠고 그것을 받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흔적를 남기면, 그것이 다음 세대의 생명을 구합니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억울함과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상상하게 할 수 있는 뭔가가 남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2016년 04월 15일 13시 34분 KST
병역을 거부하고 망명한 이예다씨, 그를 바라보는 일본의

병역을 거부하고 망명한 이예다씨, 그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

"전문대 졸업이면 아예 일자리도 별로 없는 데다가 많은 기업이나 정부기관은 "병역"을 취업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잖아요. 병역을 거부하면 거의 같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고 출소 후에는 '전과자'가 됩니다. 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가 원망스러웠고, 그런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국외로 탈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죠. 아버지는 육사를 나온 전직 직업 군인이셨는데 "니가 결정한 것이라면"이라고 하며 별로 말씀을 안 하셨지만, 어머니는 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무조건 참아! 군대 가!" "감옥에 2년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잖아"라고 통곡하셨죠. 하지만 결국은 항공권과 생활비를 어머니가 마련해주셨어요."
2015년 04월 08일 12시 55분 KST
평범한 '직장 언론인'으로서 고토씨의 죽음을

평범한 '직장 언론인'으로서 고토씨의 죽음을 마주본다

거대한 '죽음'의 숫자가 쌓일수록 사람은 불합리한 죽음에 둔감해지고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생각을 중단하게 되지 않을까? 멀리 떨어진 중동에서 수만, 수십만명이 죽어가고 있는 분쟁에는 더욱 무관심해지지 않을까? 겹겹이 쌓인 수많은 죽음이나 어려움에는 하나하나 소중하고 통절한 배경이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전하고 그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길이 아닐까. 고토 씨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그런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토 씨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외든 국내든 하나하나의 죽음이나 어려움을 마주보면서 소홀하지 않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2015년 02월 04일 13시 11분 KST
나의 북한 방문기 5편 | 평양에서 인터넷을

나의 북한 방문기 5편 | 평양에서 인터넷을 쓰다

평양에서는 고려호텔 방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고 일본판 기사도 평양에서 보낼 수 있었다. 속도도 빠랐고 검열이나 열람 규제 같은 불편도 못 느꼈다. 물론 방마다 비밀번호가 배당되어 있었고 실시간 감청은 가능했겠지만. 그런데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가능했다. 한국 사이트는 모두 차단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중국보다는 자유롭지 않은가" 싶을 정도였다. 평양에 오기 전에 하룻밤을 지낸 중국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이 완전히 차단됐고, 구글도 못 쓸 정도로 느렸다.
2014년 10월 27일 13시 59분 KST
나의 북한 방문기 4편 | 2018년 여기서도 올림픽 경기가

나의 북한 방문기 4편 | 2018년 여기서도 올림픽 경기가 열릴까?

평양에서 '고속도로'를 2시간 반 달리다가 차가 속도를 내며 옆길로 빠져 나갔다. 강원도 산길에 커다란 건물들이 나타났다. 2013년 12월 31일부터 영업을 시작한 '마식령 스키장'과 호텔이다. 이 시설은 불과 7개월 만에 완공됐다고 하는데 북한 언론이나 건설·농사 현장에서는 모두 작업 속도를 '마식령 속도'로 올리라고 재촉하고 있다.
2014년 10월 24일 10시 43분 KST
나의 북한 방문기 3편 | 칠보산을

나의 북한 방문기 3편 | 칠보산을 가다

청진 시내를 빠져나가, 일본인 성묘 방문단과 동행 기자들은 "한반도 6대 명산" 이라 불리는 칠보산으로 갔다. 안내원이 "일본인이 온 건 처음이 아닐까"라고 했다. 2014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구역에 지정된 칠보산은 국제관광구역으로 북한이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데, 조선중앙통신에 의하면 단풍철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2014년 10월 23일 06시 08분 KST
나의 북한 방문기 2편 | '움직이는 새장' 안에서 보이는

나의 북한 방문기 2편 | '움직이는 새장' 안에서 보이는 것

평양을 빠져나가면 오직 몇십년 전 시대 같은 농촌 풍경만 펼쳐지는 북한. 그런데 연일 신문과 TV의 국제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핵을 쥔 몬스터 북한. 이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농촌 풍경과 함께 마주친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보지 못할 것 같은 평양의 마천루, 그리고 이 나라의 어딘가에 있는, 우리가 접근조차 못하는 핵무기 개발 시설. 넉넉지 못한 나라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이 두 곳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농촌 풍경의 낙차는 무엇일까.
2014년 10월 17일 07시 20분 KST
나의 북한 방문기 1편 | 인터넷 언론이 취재 허가를

나의 북한 방문기 1편 | 인터넷 언론이 취재 허가를 받다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 영상 매체를 적극적으로 입국시키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대표적인 신문사는 취재 신청조차 하기 어렵다. 안내인이 말했듯이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신문은 아무래도 기사에 기자의 주관이 들어간다"는 이유도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이례적인 동행 취재 허가가 나왔다. 취재 신청 협상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북한 입국 후 그들에게 "인터넷 언론"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2014년 10월 14일 13시 48분 KST
산케이신문 '공백의 7시간' 문제가 나를 불안케 하는

산케이신문 '공백의 7시간' 문제가 나를 불안케 하는 이유

매년 5월 3일에는 아사히신문 간부와 기자들이 모여 묵념하며 "언론에 대한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맹세한다. 아사히신문에서는 매년 이 시기에 언론의 자유에 대한 연재기사도 게재하고 노조는 대규모의 심포지움을 연다. 그중에서 매년 5월 3일에 큰 조화를 보내는 신문사가 있다. 바로 산케이신문 오사카 본사다. 한국에서는 흔히 "우익적"라는 형용사가 붙어 지면에서도 아사히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은 신문이지만 입장 차이를 넘어 언론 탄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해 주는 셈이다.
2014년 08월 25일 10시 12분 KST
편견에는

편견에는 'HAPPY'로

리쓰메이칸 대학에 다니는 일본인, 재일 한국인, 중국과 한국 유학생들이 춤추는 모습을 직접 촬영했다. 고등학교 때 참가한 한일교류 프로그램이나 미국 유학 시절에 만난 한국인, 중국인 친구들이 동영상을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참가자는 100여명이나 됐다. 웃으면서 즐겁게 춤추는 것은 인종과 관계없이 인류 공통의 HAPPY다. "사람은 모두 '○○인'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라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동아시아에 펴져 나갔으면 한다.
2014년 08월 09일 06시 33분 KST
기자가 쓰레기가 안 되기

기자가 쓰레기가 안 되기 위해서는

시신이 잇따라 운반되었고, 가족들은 정보를 얻으려고 몰려들었다. 그들을 취재하려는 기자와 TV 카메라도 쇄도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대고 쫓아다니는 것은, 기자답지도 사람답지도 않았다. 초조한 심정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고, 욕설과 매도만 받았다. 자신과 언론사 전체가 미울 정도였다. 다큐멘터리 작가로 유명한 모리 다츠야는 동일본 대지진 때 매도를 당하면서도 카메라를 계속 돌렸다. 나의 취재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론은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그 꺼림칙함은 절대 정당화할 수 없다". 그래도 전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취재한다고.
2014년 05월 07일 13시 12분 KST
선장 한 명 탓인가, 그래서 세상은

선장 한 명 탓인가, 그래서 세상은 좋아질까

사회가 악인을 만들기는 쉽다. 물론 책임 있는 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악인을 규탄하는 재판에서 업계의 구조적 착취 구조나 승무원의 안전 교육을 게을리하는 업계 구조, 행정기관의 책임 등 배경 요인 규명을 기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늙은 현장 책임자 한 명을 악마로 만든 사이, 정말 나쁜 악마는 숨어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선장의 행위를 "살인 같은 행태"라 비판했다는데 선장을 화풀이 틀로만 소비하지 말고 정말 악마와 오래 시간을 걸쳐 싸워야 할 것이다.
2014년 04월 23일 08시 08분 KST
오보카타의 무서운

오보카타의 무서운 눈물

기자들 수백명이 에워싼 가운데 30세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사과의 말을 읽었다. 20대에 박사 학위를 따고, 일본의 과학계의 정점인 이화학연구소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 최첨단의 과학자가 "보기 쉽도록" 사진을 컷 & 페이스트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안 들었을까? 신문기자가 사진을 "찍힌 것은 같으니까 보기 쉽도록" 일부만 다른 사진으로 바꿔 버리면, 그 시점에서 보도 사진으로서 가치가 없어진다.
2014년 04월 16일 05시 52분 KST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청년은 왜 우익이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청년은 왜 우익이 됐을까

"이론적으로는 '생활보호 수급자 대부분이 재일한국인' 같은 그들의 주장은, 조금만 알고 보면 곧 거짓말이라고 알 수 있잖아요?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는 그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닌 거죠. 마치 '컬트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 같아요. 집단의 광기라고 할까..."
2014년 03월 31일 10시 23분 KST
일본 우익 청년이

일본 우익 청년이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이유

"그들은 애국자가 아니잖아요? 남의 아픔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놈들은 진정한 우익이 아니죠. 일본을 사랑하고 자존심를 가지고 있다면 왜 남의 심정을 짐작 못합니까? 한국인도 미국인도 자기 나라나 고향을 자랑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그들을 각성시키고 싶은 거죠. 차별하면서 애국자라니 말도 안돼요. 저는 '애국심의 폭주'를 멈추고 싶을 뿐입니다."
2014년 03월 21일 15시 18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