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5월 05일 17시 13분 KST

강간범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내는 아주 중요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성폭력의 역학, 젠더 편견을 이해하는 검사들이 필요하다. 그들을 교육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Mark Makela via Getty Images

2월의 어느 흐린 아침, 변호사 세 명이 워싱턴 D.C.에 있는 사무실에 모였다. 아주 까다로운 성범죄 사건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다른 학생들 네 명에게 강간 당했다’고 말한 대학생 에리카 레인(18)의 행동을 판사와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힘들어 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범죄가 일어났다는 날 밤, 레인은 술을 많이 마셨다. 레인이 좋아하는 미식 축구 선수 라이언 볼랜드는 레인에게 데킬라를 몇 잔 더 마시자고 했다. 레인은 그때 이미 취해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 부엌에서 스킨십을 하고, 볼랜드는 레인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없는 위층 자기 방으로 가자고 했다.

볼랜드는 자기에게 레인이 오럴 섹스하는 영상을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레인은 동의했고, 그의 침대에서 정신을 잃었다. 일어나 보니 레인은 혼자였고, 알몸이었으며, 성기가 쓰라렸다. 레인은 혼란스러웠고, 며칠 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분명해졌다. 레인이 의식을 잃은 뒤 벌어진 일을 담은 스냅챗 영상이 캠퍼스에서 떠돌아 다녔다. 영상 속에는 볼랜드를 포함한 다른 남성 세 명이 나왔다. 레인은 볼랜드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해줄 수 있어?” 볼랜드는 답하지 않았다.

레인이 취했고 볼랜드와 합의하에 오럴 섹스를 시작했다는 사실 때문에, 과연 레인을 믿을 수 있을지 검사가 의문을 제기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경찰에 이 일을 신고하고 몇 주 뒤, 레인은 인스타그램에 자기 사진을 올렸다. 미식 축구 경기장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인 모습이었다. 학생 몇 명이 이 사진을 자기 계정에 공유하며 “이게 진짜 강간 피해자의 모습인가?”라는 말을 달았다.

변호사들은 레인의 행동 때문에 레인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판사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정말 당황스러울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들은 전문가를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트라우마에 맞서기 위해, 범죄 피해를 당한 뒤 피해자가 성적 혹은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걸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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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있다. 에리카 레인 사건은 가상의 사건이고, ‘변호사’들은 사실 조지타운 대학교 법대생들이다. 그들은 검찰이 성폭력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려 하는 단체인 AE키타스(AEquitas)가 운영하는 성폭력 사건 수업을 듣고 있다. 롤 플레잉과 모의 재판 등을 사용한 인터랙티브 훈련이다.

성폭력은 기소하기 가장 어려운 범죄다. 미국에서 31%의 사건만이 경찰에 신고되고, 그중 2%만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강간·학대·근친상간 전국 네트워크(RAINN)는 말한다. 이 비율이 너무나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성폭력 재판은 복잡한데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사건을 맡기 전에 특별 훈련을 받도록 하는 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사건을 대충 다루고, 원고를 홀대하고, 법정에서는 사건을 망쳐버리는 검사들이 많다. 피해자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구역의 관행 중 좋지 않은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AE키타스의 CEO 제니퍼 롱의 말이다.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최근 성폭력 유죄 평결을 받은 것은 피해자들에게 있어서는 ‘희귀한 승리’다. 오래 전부터 생존자들을 홀대해온 사법 제도가 바뀌려면 유명인 한 명의 유죄 평결로는 한참 부족하다. 대중은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해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훈련받은 법조인들과 배심원들도 그런 생각을 지닌 채 법정에 들어선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편견들이 존재한다.

범인은 섬뜩하게 생긴 낯선 사람이고, 어두운 주차장에서 무방비 상태이던 여성을 공격한다. 믿을 수 있는 피해자라면 맞서 싸우다 달아나서 즉시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생존자들이 반직관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할 경우 - 공격자를 다시 만난다거나, 경찰 신고를 늦춘다거나, 인스타그램에 토플리스 사진을 올린다거나 - 이럴 경우에는 변호사들조차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치부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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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우리 모두에겐 편견이 내재돼 있다.” 오클라호마주 카운티 두 곳의 지방검사이며 성폭력 훈련 지지자인 리처드 스마더몬의 말이다.

AE키타스에서 가장 유명한 성폭력 관련 교육 프로그램은 3.5일짜리이다. 가상 재판 훈련과 짧은 강의들을 통해 피해자 면담부터 최후변론까지 성폭력 사건 기소와 관련된 모든 단계를 훑는다. (가정 내 폭력과 인신매매 등 관련 범죄에 대한 코스도 따로 있다.) 각 훈련마다 참가자들은 사회가 믿지 않는 경향의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경찰 보고서를 검토한다. 술에 취한 미성년자 , 남편이 보안관인 여성, 야한 옷을 입고 바텐더로 일하는 최근 이민 온 여성 등이다. 참가자들은 보통 호텔 컨퍼런스 룸에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모의 보석 청문회, 경찰과의 만남, 피해자 면담 등을 연기한다. 그들은 이런 복잡한 사건들을 기소하는 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 자기 자신이 품고 있었던 편견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훈련을 통해 변호사들은 원고를 돕는데 필요한 기술을 갖추게 되고, 궁극적으로 재판에서 더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자금 부족과 까다로운 행정 절차 때문에, AE키타스는 며칠에 걸친 훈련을 1년에 몇 번 밖에 진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거의 25000명에 달하는 미국 검사 중 아주 소수만이 이 훈련을 받게 된다. 매년 정부 지원금 150만달러를 받지만, 이 예산으로는 직원 12명이 매년 제공하는 훈련과 기술 지원을 4300시간 정도밖에 할 수 없다. 또한 3.5일 코스 및 더 짧은 훈련을 할 때마다, 약 90일이 걸리는 정부 승인 절차가 있어서 더 자주 하기 힘들다고 AE키타스의 COO(Chief Operating Officer) 크리스티나 수핀스키는 말한다.

AE키타스는 지원금 증액을 원한다. 하지만 정부와 NGO(AE키타스 예산의 5%는 여러 NGO들의 기부금이다)는 여성 보호소와 시민 단체 등 최전선의 조직에 먼저 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수핀스키는 말한다.

AE키타스는 망가진 사법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여성 폭력을 줄이는데 있어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 사법 체계가 생존자를 실망시키면 “미래의 피해자와 생존자들이 앞으로 나서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들을 위한 정의가 이루어질 거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처벌받지 않은 가해자는 더 많은 피해자들을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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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훈련받은 검사들이 없다면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편에 서는 사법 절차를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성폭력과 트라우마의 역학, 여성 폭력 범죄를 부추기는 젠더 편견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재판에서 이길 수 없다. 당신은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 번 피해를 줄 것이고 형편없는 재판을 펼칠 것이다.” 전직 검사이며 국제희망연대(Alliance for HOPE International) 회장인 케이시 그윈의 말이다.

재판 전에 검사의 피해자 면담 방식은 성폭력 사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연달아 실례를 저지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AE키타스의 훈련 담당자인 법률 고문 존 윌킨슨은 말한다. 정말 많은 검사들은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 절차를 서두르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질문을 하고, 파편적으로 상황을 기억하거나 감정이 없어 보일 경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 상황에서 신체는 호르몬들을 방출해서, 피해자들은 얼어붙은 듯이 되며 뇌가 기억을 형성하는 것을 막는다는 걸 모르는 검사들이 많다. 자연 아편 성분과 옥시토신이 몸 안에 쏟아지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사건을 회상하며 웃거나 평탄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는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 몸에서 내보내는 것인데, 이 사실을 모르는 검사들도 많다.

윌킨슨 자신도 트라우마가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피해자들을 퉁명스럽게 대하곤 했다.

버지니아주 프레더릭스버그에서 주 검사로 일했던 7년에 대해 윌킨슨은 “나는 고전적인 타입의 면담가였다. 체크리스트에 집중했다. 피해자의 말을 끊고 내게 필요한 것을 얻어내곤 했다. 나는 ‘OK,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걸 나는 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라.’ 따위의 말을 했다. 정말 못된 방식으로, ‘넌 어린애니까…’ 라고 말했다. 나쁜 놈이 되려고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지만, 나는 조금 나쁜 놈이었다.”고 회상한다.

윌킨슨은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태도를 지닌 검사들을 훈련시킨다. 한 훈련에서는 클럽에서 근무를 마치고 나오다 성폭력을 당한 바텐더 ‘엘레나 보긴스카야’(22)를 돌아가며 면담했다. 경찰 보고서에 의하면, 그 클럽의 젊은 여성 직원은 ‘타이트한 바지나 스커트, 타이트한 셔츠’를 입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그 날 저녁 보긴스카야의 배에 따른 술을 한 잔 마셨다. 검사들은 롤플레잉을 하며 스스로의 편견을 드러내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고 윌킨슨은 말한다.

“검사들이 피해자에게 질문을 던지다가 완곡한 표현으로, 혹은 아예 대놓고, 그녀가 매춘부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피해자들은[진행자가 연기한다] 대답을 하지 않고 ‘당신의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짧은 강의와 롤플레잉을 통하여 AE키타스 트레이너와 게스트 강연자들은 ‘트라우마를 잘 아는’ 접근법을 취하도록 가르친다. 검사들에게 판단을 유보하고, 원고와 신뢰 관계를 쌓으라고 권한다. 검사들도 돌아가며 피해자 역할을 맡아보고, 낯선 사람이 트라우마에 대한 질문을 퍼부으면 기분이 어떤지 느껴보게 한다.

“요란하게 들어와서 ‘팩트만 말씀해주시죠.’라는 식으로 행동하면… ‘피해자’가 곧바로 긴장하는 게 보인다 … 방어적이 된다. 그런 롤플레잉을 하다보면 ‘와, 이건 다 가짜로 하는 건데도 당신이 내게 던진 질문 때문에 나는 실제로 사생활을 침해 당한 기분, 혹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느낀다. 이 검사들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에 눈을 뜨게 된다.” 수핀스키의 말이다.

오클라호마주 탈레콰 체로키 네이션의 존 영 법무차관은 2016년에 AE키타스 코스를 들은 이후로 면담 중에 보다 참을성과 연민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트라우마가 기억을 파편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배우기 전에는 피해자들이 사건에 대해 자세하고 직선적인 증언을 할 거라 기대했고, ‘열린 질문’을 던지는 법을 몰랐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시각적 프레임을 잡아보자. 어디서 시작했는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해주고 이어진 일들을 쭉 들려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걸 트레이닝을 받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 같다.”

배심원을 설득하여 피해자를 믿게 하는 방법은?

피해자 인터뷰를 아무리 잘해도, 검사가 배심원들을 설득하여 생존자의 이야기를 믿게 하지 못하면 공정한 재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법정에서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어렵다. 최근 영국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강간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 수용’ 점수가 높았던 배심원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맥락에 맞지 않는 팩트를 거부하고 피고인 편을 들 가능성이 높았다.

AE키타스는 검사들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편견이 적은 배심원을 고르라고 가르친다. “이중에서 강간은 낯선 사람들만 저지른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트라우마를 겪은 후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나 예상이 있는가?”

“강간 당하는 것은 만취의 결과가 아니다. 취약한 상태일 때, 옆에 ‘강간범’이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배심원들에게 똑똑히 말해줘야 한다. ‘술이 있는데 힘을 쓸 필요가 있는가?’ 이 말은 알코올이 관련된 사건들의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배심원들이 들으면 넘어올 만한 말이다. 사건의 팩트를 이야기하고, 이 주제를 반복해야 한다.” 윌킨슨의 설명이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이 있는가?

AE키타의 성공담은 대부분 입증되지 않은 일화들이지만,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연구는 있다. 증인으로 나온 전문가나 판사에게 피해자의 행동에 대한 말을 미리 들은 배심원단은 ‘신고를 늦게 했거나 평탄한 어조로 말하는 피해자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낮았다. 2009년 리즈 대학교와 노팅엄 대학교 연구자들이 조사한 결과다. AE키타스는 통계, 피해자 피드백, 사건 분석을 통해 검찰이 성폭력 사건 관련 진전을 트래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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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키타스의 활동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수핀스키는 말한다. 그러나 정부에게 있어 검사 훈련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법무부의 여성에 대한 폭력 담당 부서가 AE키타스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최근 9년간 25% 정도 줄었다. 수핀스키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위험에 처한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돕는 보호소와 시민 단체 등의 지원이 더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 한다.

“5달러가 있다면 누구에게 주겠는가? 검사들을 훈련시키고 기술 지원을 하는 단체는 아마 아닐 것이다… 범죄 예방에 기여하고 있다해도.”

그러나 진짜 문제는 성폭력에 대한 코스에 관심 없는 법조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그윈은 주장한다. “미국 검찰은 역사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높은 우선순위로 취급한 적이 없다.” 그리고 검사들은 자기가 뭐든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인 사건 기소는 성폭력이나 가정 내 폭력 기소와는 다르다. 하지만 여기저기 [검사들을] 만나보면 ‘난 모두가 자기만의 작은 영역에 [집중하는데] 지쳤다. 내 밑에서 일하면 넌 모든 걸 다 하게 될 것이다.’고 말하는 선출직 지방 검사들이 많다.”

오클라호마 지방 검사 스마더몬은 검사들이 “나는 어떤 사건이든 맡을 수 있다”는 태도를 갖는 경향이 있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직원들을 3.5일짜리 훈련에 보내고 그들의 업무 공백을 메꿀 여력이 없다는 사실이라 주장한다.

“오클라호마주는 작년에 8억7000달러 예산 적자가 났다. 그래서 지난 18개월 동안 내게 주어진 예산이 12% 정도 줄어들었다. 우리는 훈련을 시킬 여력이 없다. 해고나 안 시키면 다행이다.”

 

* 허프포스트US의 기사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