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2019년 10월 16일 16시 17분 KST

기혼자가 다른 사람에게 안전하게 반한다는 건 가능할까?

그에게선 방금 세탁한 티셔츠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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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좀 들어드릴까요?”

스튜디오 시티 스타벅스 앞을 지나 차로 가고 있었다. 파피루스에서 산 중간 크기 쇼핑 백 두 개를 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그를 향해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으면서 “아뇨.”라고 말했다. 그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둘 중 더 큰 쇼핑 백을 내 손에서 집어들었다. 그의 손의 온기가 잠깐 느껴졌다. 그는 방금 세탁한 티셔츠 같은 냄새가 났다.

보통이라면 어이없다는 눈짓으로 차단하거나, 위협적으로 느꼈을 법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왠지 그의 장난스러운 건방짐은 그저 나를 웃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친구 대여섯 명과 함께 대낮에 스타벅스에서 도미노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전에는 정말로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걸어가며 그는 자기 이름(제롬)과 나이(나보다 4살 어렸다)를 말했고, 배우가 되려고 앨라배마에서 막 옮겨왔다고 말했다(즉 직업이 없다는 뜻이다).

내 차의 트렁크에 가방을 넣고 난 뒤 그는 나를 천천히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때서야 그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 젊은 덴젤 워싱턴과 아주 닮은 모습이라 놀랐다. 나는 흥미를 느낀다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얼른 표정을 바로잡았다.

예의바르게 손을 내밀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 그는 내 결혼 반지를 보았고, 심장에 총을 맞은 듯한 동작을 해보였다.

그는 몸을 뒤로 빼며 한 손을 가슴에 얹고 “얼마나 됐어요?”라고 물었다.

“12년 됐어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행복하세요?” 그의 미소에는 전염성이 있었다.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잘 가요!” 나는 차문을 열며 말했다.

주차장에서 나가며 내 몸 전체가 따뜻해졌고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내게 무슨 알레르기가 있나 싶었다.

그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게 어떤 부적절한 언행도 하지 않았고, 나는 기혼여성답게 행동했다.

그렇지 않나?

하지만 묘한 기분이 남았다. 호기심, 내가 무엇인지 깨닫기 어려웠던 느낌이 섞인 것이었다. 그건 죄책감이었다.

그가 내 가방을 들어주는 걸 막지 않아서 죄책감을 느꼈을까?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걸까? 그가 내 가방을 집어들었을 때 내 손에 닿았던 곳을 지금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그리고 나는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약 1년 정도 남편과 나는 1시간 당 300달러를 주고 캐머런이라는 커플 상담사를 만나며 내 출산 후의 ‘친밀감 이슈’를 이야기해온 터였다.

매주 캐머런의 사무실에 가려면 차로 40분이 걸렸다. 나는 캐머런의 멋진 회갈색 소파에서 보낼 1시간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도착하면 남편이 내가 자기가 집에 오기 전에 몇 번이나 잠들었는지, 자기가 아닌 5, 6세 아들들과 저녁을 이미 먹은 게 몇 번인지 캐머런에게 말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 장화 안에서 거의 빈 와인 병 하나를 발견했으며 나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할 것임을 알았다. 캐머런과의 만남은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장 깊은 두려움을 확인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매주 캐머런의 사무실에서 나올 때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더 나쁜 감정을 품게 되었다.

남편이 나에 대해 더 나은 ‘보고’를 할 수 있도록, 나는 아이들이 아닌 남편과 매일 저녁을 먹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밤이면 TV에 수면 타이머를 설정하기 전에, 그가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렸다. 그의 두려움을 달래려고 술은 아예 끊었고 그가 집에 있을 때면 더욱 함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정말 두려웠다. 내 아이들과 ‘소프라노스’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지려면 와인 몇 잔이 필요했다. 내게 가장 좋은 사교적 윤활제를 포기한다면, 그가 내가 되길 원하는 아내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회복 불가능한 정도로 망가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롬과 만난 다음 날, 나는 아이들의 점심 도시락을 챙기며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오후에 네일 케어를 받으며 소리내어 큭큭 웃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반했던 아이가 영어 수업을 마치고 교실 밖으로 나오는 걸 본 이후 이런 종류의 희열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말도 안되는 나의 즐거움이 집에서도 드러날 것 같았다. 내 남편은 똑똑한 사람이다. 내 기분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남들은 못 알아볼지 몰라도 남편은 늘 눈치를 차렸다.

이럴 수 있을까? 내가 그를 좋아하면서 결혼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냥 커피 한 잔만 하면 어때서? 기혼 여성이라고 해도 안전한 끌림을 느낄 수 있지는 않을까?

다음 날 오후 1시쯤 스타벅스의 긴 줄에 들어서며 나는 심장이 마구 뛰는 걸 느꼈다. 차를 댈 때 그가 나이가 더 많은 남성들과 밖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가 나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초콜릿 크루아상과 블루베리 스콘 중 선택하려는 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금 세탁한 옷의 냄새가 나를 감쌌다. 나는 치즈를 먹는 듯한 미소를 그가 볼 수 없도록 유리 케이스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 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였다.

후에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며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제롬에 대해, 제롬이 어떻게 나를 웃게 하는지, 그가 얼마나 나를 배려하는지, 그의 냄새가 내 정신을 잃게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미친 충동을 느꼈다. 기쁨과 죄책감이 마약처럼 내 혈관을 달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심장을 풍선처럼 터뜨릴 것만 같았다.

내 안의 떨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면제를 조금 먹기로 했다. 남편에게 말하기 전에 정상 상태가 되어야 했다. 나는 남편이 시간대가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갔다는 사실에 말없이 감사를 드렸다. 그가 집에 있었다면 나의 행동이 훨씬 더 면밀하게 관찰되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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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e and groom close up saying their vows

3주 반 동안 제롬과 매일같이 커피를 마셨다. 내 희열감은 사라져 갔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묘한 불안감이 머릿속에 울렸다. 들킨다는 생각만 해도 길고양이처럼 펄쩍 뛰었지만, 들킬까봐 두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 상황 전체가 위험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테이블 아래에서 무릎이 우연히/일부러 부딪히거나 그가 나를 차까지 데려다주며 어깨에 손을 잠깐 얹는 정도의 육체적 접촉이 고작이었지만, 나는 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제롬을 늘 생각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저녁 내내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으면 어떨까 상상한다는 것도 싫었다. 그와 함께 침대에 들어가면 어떨지, 우리의 아기는 어떤 얼굴일지, 그가 어떤 아버지가 될지에 대한 공상이 떠오르면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독감에 걸린 기분이었다. 내 윤리 기준,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위협하는 병 같았다. 나는 이 비밀 때문에 정말 병에 걸린 것 같았고, 그에 대한 생각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력했다. 그날 그에게서 내 가방을 뺏고 그냥 걸어갔더라면, 하고 신에게 빌기 시작했다.

끝이 나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계속 만나서 커피만 마실 수는 없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전에 잠깐 보기만 하고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을 수는 없다. 둘 중 한 명은 곧 진짜 감정을 품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우리의’ 스타벅스 뒤 주차장에 차를 대다가 나는 갑자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선명하게 깨달았다. 몇 주 전 저녁에 와인을 마시던 습관을 버렸을 때, 나는 무엇이 와인을 대체하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남편이 오기 전에 몰래 술을 마시지는 않게 되었지만, 나는 몰래 제롬에 취하고 있었다. 제롬은 사실 완전히 낯선 사람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 집착의 대상을 바꾸었을 뿐이었다.

내가 반한 남성이 이끄는 중력에게서 완전히 벗어하는데는 1년이 걸렸다. 제롬을 잊는 것은 정말 끔찍한 디톡스 같았다. 스스로와 타협하려 하고(스타벅스에 한 번만 더 들러도 되지 않을까?), 망상을 품고(오래됐으니까 이젠 그냥 친구로 지낼 수 있을지도 몰라), 최소화했다(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어,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한 건 없잖아?),

최근 한 기혼자 친구가 동료에게 반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가 내겐 익숙한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갑자기 좋아하게 되고, 서로 추파를 던지며 완전히 취한 기분이 들고, 그 사이사이마다 죄책감과 수치가 든다는 이야기였다.

“넌 어떻게 생각해? 그냥 끌리는 것 뿐이지? 난 극복할 수 있겠지?” 그녀가 물었다.

나는 제롬과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기대감이 몰려오고, (심지어 함께 있을 때도) 그에 대한 환상을 품고,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몸 속에서 죄책감이 느껴졌다는 걸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나는 내가 반한 것이 무해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 가정 생활에 영향을 주고, 모든 것에 스며들고 전부 장악해 버리는 독과 같이 은밀하게 퍼졌다. 제롬과의 경험은 내가 원했던 짜릿함을 소화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나의 그런 점을 받아들였다.

그 누구에게도 안전한 반함이라는 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겐 그런 게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남편과 나는 결국 이혼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스타벅스는 가끔씩 피한다. 내가 두려움과 불확실성에 가득해, 스릴을 위한 스릴을 찾았던 시기를 상징하는 장소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 HuffPost US의 Is There Such A Thing As A Harmless Crush When You’re Married?를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