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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01일 10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01일 10시 39분 KST

법 지키는 검사가 자신은 못 지킨 자괴감, 미투의 두 달

"내가 유명해지려고 정치를 하려고 인사를 잘 받으려고 이번 일에 나섰다고도 의심하더라. 그래도 거짓말 안 하고 성실히 세상을 대하다 보면 언젠가 내 진심을 알아주실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미투 이후 두달 만에 서지현 검사가 최근 심경을 밝혔다. 

무척 망설였을 것이다. 서지현(45·연수원 33기)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현직 검사가 대검찰청의 허락을 받지 않고 텔레비전 생방송에 출연해 검사임을 밝힌 상황에서 인터뷰를 한다는 건 대한민국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것도 전직 고위급 검찰 간부의 성추행 혐의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1월29일 서 검사는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자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어 나왔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보다 사흘 앞서 서 검사는 26일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글도 올렸다.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에서 ‘안태근(52·사법연수원 20기)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사건 이후 부당한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약 두달의 시간이 흘렀다. 서 검사의 인터뷰 다음날인 1월30일 법무부가 ‘피해 검사가 제기한 문제 전반에 대하여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엄정히 처리하도록 지시’ 발표한 뒤, 31일 대검은 ‘여검사 성추행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조직했다. 하지만 두달이 지나도록 검찰은 여전히 뾰족한 수사 결과를 내놓고 있지 않다.

지금 서지현 검사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제이티비시 출연 이후 그는 일체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지내고 있다. 그에게 거듭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되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검찰에서 진상조사가 한창인데 당사자가 언론에 또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변화의 조짐이 보인 건 최근의 일. 3월22일 늦은 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구속수사 영장이 발부된 직후 서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상이 점점 변하긴 하네요.” 휴대전화 너머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엔 들릴 듯 말 듯 한 희망이 서려 있었다. 그의 집 앞에서 무작정 한참을 기다리니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다른 사람이 자기 앞에서 힘들어하는 걸 못 참는 게 그의 성격이었다. 늦은 시각이었으나 그와 오랜만에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요즘 심경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힘들다고 하면 최근에 용기 낸 또 다른 미투들, 앞으로 나올 미투들에게 폐가 될 것 아닌가. 그래서 답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많이 야위었다.

“좀 아팠다. 최근 티브이 화면에 안태근 전 국장이 나왔는데. 그때 너무 놀라 심장이 마구 뛰었다. 용기 낸 미투였지만 정신적 외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정신과를 꾸준히 다니고 있다.”

―미투 고백 이후 일각에서 ‘인사 이익을 받으려 한다’는 등의 오해도 받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돈도 명예도 무상하구나. 어머니는 2003년 사법연수원 시절에, 아버지는 2008년 검사 시절에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하늘에 계신 부모님 보시기에 자랑스러우시라고 검사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검사 일에 자부심이 생겼다. 돈도 명예도 무상하다는 걸 두분의 죽음을 통해 배웠다. 이후 하루를 살아도 부끄럽지 않게, 소박하지만 즐겁게 살자는 게 내 목표였다. 혹자는 내가 유명해지려고 정치를 하려고 인사를 잘 받으려고 이번 일에 나섰다고도 의심하더라. 각자 지향하는 방향에 따라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 같다. 혹시라도 이 인터뷰가 나가면 또 누군가는 나보고 ‘관종’이네, 무슨 의도가 있네, 또 그러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짓말 안 하고 성실히 세상을 대하다 보면 언젠가 내 진심을 알아주실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날 바로 검찰 그만둘 생각이었다”

―처음 방송에 나온 날 얘기가 궁금하다. 서 검사 덕분에 미투 운동이 점화됐다. 최초 고백 당시 심정이 어땠나?

“즉흥적으로 (방송에) 나가게 된 것이었다. 원래는 검찰 게시판에 미투 글을 올리고 검찰을 그날 바로 그만둘 생각이었다. 모든 걸 다 버릴 각오로. 내가 얼마나 검사 일을 좋아했는지 알지 않나.(침묵)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서 검사, 게시판에 글을 올린 건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었네. 하지만 여기서 검사직을 버린다면 검찰이 과연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진상 조사를 할까?’ 여느 때처럼 폭로가 묻힐 거란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시다시피 원래 검사가 대검의 허락 없이 인터뷰에 응하면 안 된다. ‘서 검사가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서 희생하면 많은 피해자들을 도울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주변 조언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라고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잠시 목이 메던 서 검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무렵 어떤 분이 내게 그런 말도 해줬다. ‘그런 일을 당한 건 서 검사 잘못이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 이 말에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렸다. 나도 또 다른 이 땅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

이후 26일부터 29일까지 이어진 몇차례 전화통화에서 서 검사는 검찰의 후속조처에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얼굴 이름 다 내놓고 하는 미투는 우리나라에선 사회적 자살행위잖아요. 이 이후의 정상적 삶은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검찰 아직도 하고 있는 짓 좀 봐요.” 자신은 ‘사회적 자살행위’를 마다 않고 용기를 냈는데도 수사 진척이 더딘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미투, 후회한 적은 없나?

“후회보다는 마음 아팠던 적은 있다. 한 부장검사가 검찰 게시판에 내가 마치 자리를 잘 받기 위해 폭로했다는 식으로 글을 올렸다. 저의 미투 직후에 말이다. 그게 참 충격적이더라. 검찰 내부자라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 아니, 그런 폭로 후에 검찰에서 퍽이나 인사를 잘 내주겠다. 우리 내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기자들도 볼 수 있는 게시판에 그런 글을 올리나. 게다가 같은 여성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을 주는 글을 올릴 수 있나. 이 건은 도저히 넘어갈 수 없어서 현재 그에 대한 고소를 진행 중이다.”

한 현직 부장검사가 지난 2월1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성추행당했다고 서울로 발령 내달라, 대검 보내달라, 법무부 보내달라 등의 요구를 하는 건 옳지 않다’는 취지로 서 검사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휴직하라’ 지시받아

서 검사를 사석에서 처음 만난 건 2016년 3월. 서 검사가 2013년부터 약 2년 동안 1200명을 영상녹화조사 한 결과를 토대로 ‘영상녹화조사 베이식 매뉴얼’을 작성한 게 계기였다. 그는 늘 자신의 업무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검사라고 해서, 자신의 위치가 상대보다 유리하다고 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타이핑 조사 때와 달리 영상 조사를 하게 되면 피의자의 눈을 바라보게 된다. 진실하고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믿었다.”

그가 안태근 국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건 2016년 5월 서울 잠실에 있는 한 카페에서였다. 최근 성희롱 피해를 입었는데 그냥 참고만 있다는 기자의 말에 서 검사는 “당신 잘못이 아니다. 실은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가해자로부터 사과받고 싶다는 의사를 상부에 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조직을 알기에 애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피해 사실을 묵인한 것에 대해서만큼은 적잖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그는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소속 지청의 한 간부가 휴직을 강권해 이뤄진 일이었다. 2015년 수석검사가 이미 있던 통영지청으로 전례 없던 발령이 나자, 아이 맡길 곳을 급히 알아보기 위해 일주일간 휴가를 요청했더니 “그럴 거면 차라리 휴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여러모로 얼떨떨해 보였다. 예상치 않던 일이 계속됐던 탓이다.

서 검사는 2014년 사무감사에서 지적사항이 발견돼 경고를 받았고 이듬해 정기인사에서 통영지청으로 발령 났다. 검찰 사무감사에서 징계를 받아 수원이나 천안으로 이른바 ‘좌천’된 사례는 있었지만 경고만으로 통영까지 속칭 ‘날아간’ 사례는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2015년 2월 안태근 검사가 법무부 검찰국 국장에 부임한 직후였다.

“검사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필요한 직업이다. 눈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사람들, 떠올리기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조금만 자신에게 불리하면 검사가 돈을 먹었네 어쩌네 하며 욕하는 사람들, 피해자 이상으로 상처를 입은 가족들, 이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권력으로 상대를 윽박지르지 않고 인간애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것, 그것이 내가 가고 싶은 검사의 길이다.”

“밤이 되면 그날의 고통이 엄습해온다”

2016년 9월 통영지청으로 복귀한 그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평소보다 조금은 밝아 보였다. 2009년, 2012년 형사부, 과학수사 분야에서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2, 2013년에는 형사부, 강력부, 과학수사 분야에서 4차례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패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공황장애가 발병했던 탓이다.

2017년 1월 그가 수면 중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당시 통화 기록이다. “낮에는 일에만 집중하지만, 밤이 되면 그날의 기억이 엄습해온다. 울화가 치밀어 잠을 잘 수 없다.” 서 검사는 특히 “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명함을 달고 다니면서 정작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출범. 서 검사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2017년 5월11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임명 첫날부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해서다. 이즈음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서 검사의 안타까운 사연이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후 진행상황에 대한 취재에 나섰으나 민정수석실로부턴 별다른 답을 얻지 못했다.

2017년 9월 중순 어느 날. 서 검사는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검찰 내부에 나 같은 피해자가 나 한명이라는 법도 없다. 걱정된다. 과연 검찰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진상을 밝혀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올해 1월29일 그가 텔레비전 방송에 등장하기까지 다시 반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