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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12일 15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12일 14시 12분 KST

스탄

기대만큼 두렵던 곳은 파키스탄이었다. 힌두와 이슬람의 종교 분쟁으로 왕왕 폭탄이 터지는 곳이었다.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와 라호르가 안전하다는 이야기와 달리, 촬영 전날 골동품 시장에서 폭탄 테러로 세 명이 죽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 전류처럼 몸을 돌았다. 인간이 죽음에 가깝다고 느낄 때 몸은 본능을 발휘한다.

이상협

1.

불상이 모셔진 나라를 다녔다. 반년 동안 중국, 인도, 미얀마, 파키스탄, 유럽 등지에서 불교와 불상의 흐름을 좇았다. 기대만큼 두렵던 곳은 파키스탄이었다. 힌두와 이슬람의 종교 분쟁으로 왕왕 폭탄이 터지는 곳이었다.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와 라호르가 안전하다는 이야기와 달리, 촬영 전날 골동품 시장에서 폭탄 테러로 세 명이 죽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 전류처럼 몸을 돌았다. 인간이 죽음에 가깝다고 느낄 때 몸은 본능을 발휘한다. 성석제의 단편소설 <내 인생의 4.5초>에는 죽기 직전, 엄청난 양의 엔도르핀 샤워를 경험하는 주인공 이야기가 나온다. 고통을 불감케 하는 몸의 자기 방어기제일 것이다. 비슷한 일이 내 몸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생존의 확률이 높아지는 쪽으로, 혹은 죽음의 두려움을 상쇄시키는 쪽으로 몸이 작동했을 터이다. '하루'라는 시차는 일주일을 두고 보면 길고, 일 년을 놓고 보자면 짧았지만, 단 하루라는 시간차로 나는 살았구나 생각하니 섬뜩하고 기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기쁨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음(-)에서 0으로 돌아온 감정을 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암 판정이 단순 염증으로 밝혀진 환자의 기분처럼. 인생은 일체개고(一切皆苦)이니 쾌락이란 본디 존재하지 않으며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착각한다고 해야 할까? 기쁨과 행복이란, 끝없는 음(-)속에서 간신히 0의 선상에 도착해 출렁이다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감정의 소요인가? 우리는 숨을 참고 삶이란 바닷속을 걷다 잠시 수면 위에서 쉬는 숨을 기쁨과 행복이라고 오해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고통의 반대말은 무통인가? 무수한 유성들을 피해 살아남은 지구처럼, 어쨌든 나는 살아있다. 죽을 뻔 했다고 말하기엔 싱겁기도 하다. 낯선 곳에서 극적인 사건을 겪은 자의 모험담적 흰소리겠지만, 다행히 나는 살아 있다. 다행(多幸)은 알아차리지 못한 많은(多)행운(幸)들이 지나간 시간의 마른자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식하지 못한 죽음의 가능성들이 나를 빗겨갔을 것이다. 나에겐 죽음에 근접했던 시간이 있다.

2.

국경에 관해 환상이 있다 나는 거듭된 상상을 통해 이미지를 확장시켰다. '국경의 세계'는 구체적으로 조립되어갔다. 각자의 이상형을 만드는 비밀하고 공고한 작업처럼 말이다. 삼엄한 경비, 철탑 위의 보초들, 철책을 두른 바리케이드, 몸 수색을 받기 위해 늘어선 줄, 땀에 젖은 여권. 불시에 방향을 바꾸는 바람, 적자색 노을 속 처연히 두 개의 국기가 나부끼는 경계. 내가 상상하던 국경의 모습이다. 국기하강식을 보기위해 와가 보더(waga border)에 갔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경계이다. 첫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요원처럼 비장하게 두리번거렸다. 죽음을 지나왔다는 허세에 기인했으리라. 라마단 기간이었다. 해 뜬 시간엔 물 한 모금 마시는 일조차 눈치를 보았는데, 웃고 떠들며 국경으로 향하는 이들은 생경했다. 국경은 잘린 성곽 같은 벽돌 건물로 나뉘었다. 가로지르는 도로의 양편은 관중석으로 둘러있다. 관객 이라니? 플레이오프 1차전 날의 야구장처럼 응원이 시작되었다. 인도 사람들의 함성이 국경을 넘었고, 파키스탄 사람들은 함성으로 함성을 받아 넘겼다. 응원과 노래를 주고받는 와중, 닭 벼슬 모양의 모자를 쓴 양 국가의 군인들이 익살스런 걸음으로 국경으로 난 길 사이를 왕복했다. 국기 하강식엔 승패가 있다고 했다. 승패라니? 모의 전투라도 벌이는 걸까. 국기를 천천히 내리는 국가가 이기는 규칙이 있다고 했다. 그 날 환호한 것은 파키스탄 관중들이었다. 분리의 비장함을 축제와 놀이로 만들다니. 해학과 유머의 즐거운 국경이라니. 실망과 배신감이 엄습했다. 분단국가 출신의 태생적이고도 어설픈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10루피짜리 파키스탄 국기를 건성으로 흔들며 나만의 국경을 떠올렸다. 실패한 소개팅에서 돌아와 자신의 이상형을 떠올리는 일처럼. 실망이란 감정은 사실과 상상의 낙차이다. 그 곳에 시가 있다. 거센 물줄기의 저항을 극복하고 사실에서 상상 쪽으로 거슬러 오르는 어느 지점에 문학이 존재 할 것이다. 시가 좋은 것은 사실과 상상의 경계에 능청스레 설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은 몽상적으로, 상상은 극사실로 펼쳐지는 이상한 세계가 생겨나도, 그것이 실패한 세계라도 윤리적 문제는 없다. 아니 그것이 시의 윤리(Ethica)일지 모른다. 시는 실패한 국경에서 자란다.

스탄

목숨이 줄어드는 쪽으로 가면 밥맛이 좋고 발기가 잘되고 손발은 민첩하며, 살 수 있는 쪽으로만 움직인다 저절로 나의 몸은 삶이 잘 수신되는 라디오처럼 자꾸 무얼 듣는 데 또렷한 그 메시지는 나의 혀가 잃어버린 국어를 발성하여, 살고 싶어지는

인샬라. 무엇에 대한 평화인지도 잊은 채 기대가 기만인 시절에서 폭탄은 폭죽처럼 환하게만, 골동품 거리에서, 박제된 神들 터진 살점 훑어가는 붉은 소실점에서 들리는 조용한 그 말씀은 점집에서 사온 부적 같은 주문 같은 쓸모 모두부 같은 그 말씀 쥐고 출소자처럼 두리번

총검을 든 잿빛 수염이 와 몸을 더듬는 동안 국경이 깃발을 머뭇거리는 동안 나는 잘못 없이도 잘못한 모든 일이 되어 모국의 내 습관대로 잘못한 일을 만들어 고하고 싶어지는 국기 하강식 위로 목 붉은 새떼 날아가고

라마단의 해 지고 어둠 속에서야 먹을 것 주섬거리는 국경 사람들 더듬어지는 이방인의 몸을 바라보는 흰 눈 허기 속에서 검문당하는 몸피 잔 근육 저절로 움찔대는 동안 검문하는 몸도 미량의 죽음을 느끼며 당신도 나도 이상한 반성의 시간이 지나길 바라는 건 우리의 인샬라 "웨라유프럼" 반쯤 웃는 하얀 이 청하는 악수가 神이었다.

< 2013 문예중앙 - 여름호 >

Waga border 국기하강식 장면

PRESENTED BY 오비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