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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19일 07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7월 19일 14시 12분 KST

또 하나의 삼성공화국?

베트남 기자들로부터도 베트남 경제의 대 삼성 의존도에 대한 우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삼성도 그런 분위기를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전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와 전 주한 베트남 대사를 고문으로 위촉한 것도 그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으로 만들어온 '관리의 삼성'다운 방식이지요. 이러다간 베트남이 또 하나의 '삼성공화국'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겨레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공장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35만평에 이르는 이 공장에서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까지 직접 생산해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전세계로 수출하는 삼성 스마트폰의 35%가 베트남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지난해 삼성전자베트남법인의 수출액은 지난해 베트남 전체 수출의 18%를 차지했습니다. 그 결과 베트남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에서 흑자국으로 전환됐습니다. 이 공장에 고용된 인력은 4월말 현재 5만4천명에 이르며 65곳의 협력업체에 고용된 숫자는 8만명이 넘습니다."

지난 13일 베트남통신사 주최로 열린 '스마트폰시대의 언론' 세미나에 참석했던 베트남 기자들과 함께 하노이 북쪽 박닌성 옌퐁공단에 위치한 삼성전자베트남법인(SEV) 공장을 찾았을 때 현지 삼성전자 홍보담당자는 베트남 내 삼성의 위상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혁신과 인재양성, 지역과의 공생이 삼성의 DNA라면서 현지공장 직원에 대한 대우가 얼마나 좋은지, 사회공헌활동은 얼마나 활발하게 펴고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날 저녁 자리를 함께 했던 한 삼성 임원은 올 3월 가동을 시작한 타이응우옌성 옌빈공단의 휴대폰 제2공장이 본격화하면 전세계 스마트폰 수출물량의 절반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게 되고, 베트남 전체 수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30%대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에서의 삼성의 위상은 젊은이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노이 시내를 안내해주었던 한 젊은이는 대학의 한국어과가 가장 인기 있는 학과 가운데 하나이며 많은 젊은이들은 한국 기업, 그 가운데서도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습니다. 민족주의자나 국가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국 기업이 외국에서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삼성쪽의 설명을 듣는 동안 왠지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한국정부가 고용창출을 위해 필요하다며 도입한 감세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삼성이 실제로는 국내 휴대폰 생산규모는 반토막 이하로 줄이는 등, 국내에서의 신규투자나 일자리 창출엔 인색하면서 국외에서 이토록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외국계 기업 한 곳에 전체 수출의 20~30%를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베트남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거꾸로 한 나라에 이렇게 집중투자하는 것이 삼성 자체에 위험요소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그날은 파라셀군도에 대한 중국의 석유시추에 분노한 반중시위대의 중국계 기업들에 대한 공격이 최고조에 달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시위로 중국계 기업이 몰려있는 공단 등에서는 방화가 잇따랐고, 중국인 2명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중국기업으로 오인 받은 한국기업에 대한 공격도 없지 않아, 한국기업들은 피해를 막기 위해 부랴부랴 정문에 태극기를 내걸어야 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혹시라도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경우, 삼성이 타격을 받을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양국간 갈등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삼성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베트남 언론들에서는 벌써부터 외자기업에 대한 특혜가 지나치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간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발전 전략을 취해왔지만, 기술이전 효과는 5%에 머물렀다며 외자기업에 대한 지나친 우대조처를 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그날 모임에 참가했던 베트남 기자들로부터도 베트남 경제의 대 삼성 의존도에 대한 우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삼성도 그런 분위기를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전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와 전 주한 베트남 대사를 고문으로 위촉한 것도 그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으로 만들어온 '관리의 삼성'다운 방식이지요. 이러다간 베트남이 또 하나의 '삼성공화국'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한국사회를 삼성공화국이라고 지칭할 때, 그것은 초일류기업 삼성이 우리의 삶 곳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의미를 넘어 권력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자본의 이미지로 떠올려집니다. 자신들의 부를 늘리고 지켜내기 위해 불법과 탈법도 마다하지 않고, 사회 각 분야에 삼성장학생을 포진시켜 그들의 뜻대로 법과 제도를 굴절시켜온 모습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모습의 삼성이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에까지 복제되는 것은 삼성을 위해서도 해당 나라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삼성은 새로운 시대 앞에 서 있는 듯합니다. 심장병으로 쓰러진 이건희 회장의 쾌유를 빌지만, 그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이전처럼 경영일선에 나서기는 어려울 듯하기 때문입니다. 포스트 이건희시대의 삼성은 후진적이고 부정적인 삼성공화국 이미지를 걷어내고 명실상부한 초일류기업 삼성으로 뻗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백혈병 환자들과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삼성의 조처가 한국민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새로운 삼성으로 변화하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