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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04일 02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7월 04일 05시 38분 KST

‘언론탄압' 상흔 : PD수첩 '씁쓸한 1000회'

MBC

<문화방송>(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피디수첩>이 지난 1일 1000회분을 내보냈다. 햇수로는 24년이다. 축하받을 일이지만 문화방송 안팎으로 무덤덤한 모습이다.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자임하면서 정치·자본·종교·언론 등 힘있는 집단의 치부를 정면 고발해왔지만, 최근에는 ‘권력이 불편해하는 건 다루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피디수첩이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부침,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와 운명을 같이해 온 탓이다.

■ 탐사저널리즘의 개척자

피디수첩은 1990년 첫 방송 이후 방송저널리즘을 질적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였다는 점에 언론학자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그전까지 방송보도는 대통령의 근황을 전달하는 데 주력해 ‘땡전뉴스’, ‘뚜뚜뚜 뉴스’ 등으로 조롱받았다.

피디수첩은 또, 국내 언론에서 탐사·피디(PD)저널리즘 영역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피디저널리즘’은 프로듀서(피디)가 중심이 돼 특정 사안을 심층 취재하는 것으로, 일반 기자들이 만드는 뉴스에 견줘 보도의 깊이가 달랐다. 1980년대 후반까지 일반 기자들은 권력기관 출입처의 논리에 ‘포섭’돼 있거나 형식적 객관주의에 그치기 십상이었기에, 당시 언론 상황에서 새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한국방송>(KBS)의 <추적 60분>, <에스비에스>(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도 궤를 같이한다.

특히, 피디수첩은 1987년 문화방송 노동조합 설립과 방송민주화 운동의 산물이었다. 1989년 광주민주화운동 고교생 희생자의 어머니를 통해 5·18의 시대적 의미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김윤영 피디가 피디수첩의 초대 팀장을 맡았다.

첫 방송부터 다국적기업의 임금체불 문제를 다룬 피디수첩은, 권력의 잘못을 주로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다뤄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변칙 상속 문제(2000년), 송두율 교수 사건에 얽힌 국가보안법 문제(2004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2005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2008년), 검찰을 둘러싼 향응·성접대 문제(2010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2010년), ‘4대강살리기사업’으로 포장된 대운하사업 문제(2011년) 등을 고발해 사회적 공론화에 기여했다.

■ ‘언론탄압’ 상흔으로 얼룩져

권력의 치부를 들춰낼수록 그에 비례해 권력의 공세는 거세졌다. 실제 피디수첩은 방송 첫해부터 권력의 공격 대상이었다.

문화방송 사장은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을 앞둔 농촌의 현실을 담은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편에 대해 “사상 첫 남북총리회담이 열리는데 북한 쪽에 우리 농촌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부정적인 내용을 방송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방을 지시했다. 불방 사태에 항의하는 노조위원장과 사무국장이 해고되자, 문화방송 노조는 해고자 복직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파업에 들어갔다. 이때 손석희 당시 문화방송 아나운서를 비롯해 조합원들이 구속·연행됐지만, 결국에는 해고자 복직은 물론 공정방송을 위한 기틀을 잡는 계기로 갈무리됐다.

피디수첩의 시련은 이명박 정부 때 절정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편이 촛불집회의 배후였다는 논리를 펴며 집요한 탄압에 나섰다. 정부 고위공직자가 제작진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자, 검찰은 제작진을 체포하며 재판에 넘겼다. 사쪽은 피디·작가들의 전출, 아이템 검열과 불방 지시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는 ‘국장책임제’라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도 망가뜨렸다. 1990년부터 시행한 국장책임제는, 국장이 프로그램의 기획·취재·방송에 대해 최종 권한을 갖고 책임을 지는 제도다. 경영진이 프로그램 내용에 쉽게 관여하지 못하도록 국장에게 ‘외압의 방패’ 구실을 하도록 한 것이다. 2012년 문화방송 파업 과정에서 이게 무너졌다.

피디수첩의 제작사정에 밝은 한 문화방송 차장급 피디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장책임제가 ‘본부장책임제’로 후퇴한 뒤에 제작진 자체적으로나 간부급의 아이템 검열이 심해졌다. 4대강 건만 해도 과거 피디수첩이 고발한 내용을 감사원이 확인해줬는데도 발제가 거부된 것으로 안다. 본부장은 국장보다는 경영진에 가까워서 아무래도 저널리즘적 측면보다 사쪽 입장을 고려하기 쉽다”고 말했다.

그새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도 떨어졌다. 시사주간지 <시사인(IN)>이 해마다 벌인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피디수첩은 2010년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 2위(11.8%)에서 2012년 2.3%, 2013년 2%로 급전직하했다.

■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만이 근본 해답

“이명박 정권부터 방송을 노예처럼 부리려 하고 있다. 그런 정권과 그에 동조하는 경영진이 있는 한 피디수첩이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디수첩의 명예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최승호 피디의 진단이다. 이명박 정부 때 피디수첩을 만들던 최 피디는 엠비시에서 해직된 뒤 현재는 탐사보도전문 대안언론인 <뉴스타파>에서 활약하고 있다.

언론 전문가들은 피디수첩이 ‘제 모습’을 찾으려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를 차단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지난 정부부터 최근까지 언론 통제를 넘어, 저널리즘의 역할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정치·경제 권력 등 외압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방송 제작을 위해서는 정부·여당이 사장 선임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부)도 “편집권이란 이름으로 간부들이 일선 제작자들을 통제하는 구조가 계속 이어지는 한,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하는 이슈들을 제작진이 피할 수밖에 없다.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피디수첩 현 제작진 역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피디수첩 제작팀 소속의 한 피디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본부장이 제작 전반을 책임지게 되니 아이템에 관여하기는 하지만 2012년 파업 직전보다는 내부 소통이 원활해 큰 불협화음이 일거나 하진 않는다”며 “취재 여건은 안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어떤 사안이든 핵심을 꿰뚫는 방송을 하려는 제작진들 의지는 여전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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