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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25일 05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9월 24일 14시 12분 KST

아버지가 원전을 배운 도시에서 탈핵을 논하다

저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에 '탈핵 캠페이너'로 온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원전과의 대를 잇는 인연 때문이지요. 제가 아기였을 때 , 제 아버지는 원전 관련 기술을 배우러 프랑스에 몇 개월 출장을 오신 적이 있습니다. 화상 통화도 없고 해외 통화도 비싸던 시절, 어머니가 보내 준 카세트 테이프 속 제 목소리로 그리움을 달래셨다는 얘기를 아버지는 가끔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배운 기술로 세운 한국 핵 발전소를, 이제 그 아들이 닫겠다고 같은 곳에 와 있으니 세상사가 참 아이러니지요. 연구자를 파견하며 한국이 그렇게 따라가고 싶어했던 프랑스는 이미 점진적으로 핵발전소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 중입니다.

지난 7월 9일부터 3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 세계 그린피스 탈핵 캠페이너들의 연간 회의에 다녀왔습니다. 더 이상 환경 문제에 국경이 의미 없는 시대에,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그에 대한 대응도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세계 각국의 사무소들이 그린피스라는 하나의 정체성 아래 함께 고민하고 전략을 수립해 캠페인을 진행하지요.

참석자의 절반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핵발전 없는 안전한 세상을 위한 캠페이너라는 동질감으로 순식간에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십 년이 넘도록 승진도 하지 않은 채 전 지구적 탈핵에 힘써온, 여전히 실력도 열정도 쟁쟁한 선배 캠페이너들과의 만남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중 자그마치 35년을 탈핵에 몰두해 온 스코틀랜드 출신 숀 버니(Shaun Burnie)와의 만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미국 버몬트 양키 핵발전소를 폐쇄시킨 경험을 비롯, 한국에서 겪은 안기부 요원들과의 해프닝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숀의 에피소드는 가히 탈핵의 현대사라 할 만했습니다. 특히, 1994년 한국 원전 지역 순회 당시 느낀 시민들의 에너지가 엄청났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시민들의 힘으로 한국 탈핵이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달성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전망을 해주더군요. 숀을 보면서 저렇게 수십 년간 지치지 않고 탈핵 캠페이너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3일 내내 각 국가 캠페이너들이 각 국의 핵발전 산업 현황을 공유하고 또 탈핵 캠페인 성공 스토리를 나눴습니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좀 더 시야를 넓히니, 한국 언론이 말하는 핵발전 산업의 장미빛 현황이 얼마나 거짓말인지 더욱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특히 최근 미국, 캐나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고무적인 성공 스토리를 들을 땐 한국 탈핵에도 더 희망을 가지게 되었지요.

저 역시 한국 핵발전 산업 현황과 전망을 발표했는데, 탈핵을 위해 산전수전 다 겪은 캠페이너들이 듣기에도 한국의 현황과 후쿠시마 이후에도 변함 없이 공격적인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은 매우 충격적인 모양이었습니다. 특히나 한 부지에 전 세계에 유례 없이10기 이상의 원자로를 밀집시키게 되는 고리 원전, 또 그 원전이 인구 3백만이 넘는 도시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다들 믿기 어렵다고까지 했습니다. 부산과 울산에 위치한 고리 핵발전소는, 전세계 어느 나라의 상식으로 봐도 정말 현 정부에서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10년 뒤를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핵발전이 명백하게 쇠락해가는 미국과 유럽의 상황과 반대로 점점 심각해져가는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의 오늘을 볼 때, 어쩌면 10년 뒤 똑같은 미팅에는 북미와 유럽 캠페이너들이 모두 사라지고 저와 중국, 인도, 러시아 캠페이너들만 남아서 서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재미있게도 인도에서 온 동료도 같은 생각을 했답니다. 마지막 날, 그와 자전거로 파리 시내를 돌아보고 저녁에 맥주 잔을 부딪치며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더 열심히 캠페인을 펼쳐 보자"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에 '탈핵 캠페이너'로 온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원전과의 대를 잇는 인연 때문이지요. 제가 아기였을 때 , 제 아버지는 원전 관련 기술을 배우러 프랑스에 몇 개월 출장을 오신 적이 있습니다. 화상 통화도 없고 해외 통화도 비싸던 시절, 어머니가 보내 준 카세트 테이프 속 제 목소리로 그리움을 달래셨다는 얘기를 아버지는 가끔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배운 기술로 세운 한국 핵 발전소를, 이제 그 아들이 닫겠다고 같은 곳에 와 있으니 세상사가 참 아이러니지요. 연구자를 파견하며 한국이 그렇게 따라가고 싶어했던 프랑스는 이미 점진적으로 핵발전소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 중입니다.

탈핵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원전 연구자셨던 제 아버지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생각이 많이 바뀌셨고, 단계적 탈핵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올바른 흐름으로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그린피스는 지구상 마지막 원전이 문을 닫는 날까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캠페인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No Nukes in Korea, East Asia, and in the World!!!

PRESENTED BY 오비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