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5월 24일 16시 06분 KST

나는 게이다. 그녀는 이성애자다. 우리는 함께 아이를 갖기로 했다

서로 사랑하는 현대적 가족의 긍정적 사례가 되기

COURTESY OF DAVID ARRICK

나는 11살 때 아버지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충격적이었지만, 아버지의 섹슈얼리티 때문에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것,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나서 우리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래도 혼란스러웠다. 그때는 1978년이었고, 매체에서는 정상적으로 묘사되는 게이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게이라는 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전혀 몰랐다.

내가 아버지의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무렵, 나는 내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16세 무렵 나 역시 게이로 커밍아웃했다. 아버지와 나는 감정적 격류를 지나왔지만 나는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가족 안에 롤 모델이 있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 덕에 내 나이의 게이들은 대부분 몰랐던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게이라고 해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

나는 평생 그 사실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커밍아웃한지 25년 뒤, 내가 대학에서 만난 친구 하이디와 나는 함께 아이를 갖는 것이 어떨지 의논하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일부 게이 남성들을 괴롭히는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하이디는 내게 가족이나 다름없었고, 우리가 보기에 아이를 갖는 것은 우리의 깊은 우정의 자연스러운 연장이었다. 우리는 둘 다 싱글이었고, 우리 가족 모두 서로를 알고 좋아했다. 명절도 여러 번 함께 보냈다. 우리는 웃음의 코드가 같고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무척이나 부모가 되고 싶어했다. “만약 우리 둘 다 몇 살까지 미혼이면…”, “우리가 같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같은 말들이 몇 년 동안이나 우리의 대화 중에 튀어나왔다. 진지하게 의논하기 시작해보니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우리가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 2010년 무렵, 매체에서는 대안적 육아와 가족 타입이 부쩍 많이 등장했다. 미란다와 캐리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무서운 나이’, 즉 아기를 갖기엔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나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윌 앤 그레이스’와 ‘모던 패밀리’는 동성애를 클로짓 밖으로 끌어내며 현대 게이의 삶에 밝은 조명을 비추는 동시에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들을 제시했다. 우리가 참조할 만한 게이 아버지와 이성애자 어머니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롤 모델은 없었지만, 육아의 새로운 가능성이 정말 많았다. 하이디와 아이는 우리 식의 현대적 가족을 현실화하기로 결심했다.

COURTESY OF DAVID ARRICK

처음 가보는 길을 걷는 우리는 오직 본능만을 따라야 하겠지만, 처음으로 부모가 된 사람들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아마존에 ‘게이 아빠, 이성애자 엄마’, ‘당신의 게이 절친이 당신의 애아빠가 될 때’ 같은 책 따위는 없었다. 법적인 것부터 경제적인 것까지 정리해야 할 이슈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사소한 일들에 불과했다. 나는 우리가 ‘커플’이 되어 크게 유리해졌다고 느꼈다. ‘하이디와 나는 20년 동안의 우정 없이 임신하는 다른 여러 사람들보다 더 나은 입장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고, 이미 부모가 된 듯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우리 계획을 숨긴 채 우리는 임신을 시도했다.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니 둘 다 키득키득 웃게 되어, 의료 조치없이 집에서 시도하기로 했다. 하이디가 간호사라 의학적 지식이 도움이 되었다. 멸균 컵과 주사기 등 임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장비들을 구했다. 3개월 안에 하이디가 임신되지 않으면 각자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불임의 원인이 나라면 나는 실망은 하겠지만 정중하게 물러서고 나 없이 임신이 성공하도록 행운을 빌기로 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하이디가 배란할 때마다 체내사정을 했다.

우리는 최대한 마음 편히 하려고 애썼다. 성공한다면 우리의 삶이 영영 바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이러고 있다는 게 좀 코믹하기도 했다. 정말 많은 게이 남성들과 대학 시절의 이성애자 여자친구들은 “만약 내가 40살까지 결혼을 안했으면…”, “넌 나랑 제일 친한 친구고 게이야. 우리 같이 아기 갖자!”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걸 실제로 하고 있다니. 그들의 대화가 내내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임신을 시도하는 날에는 은은한 조명도, 샤도네이 와인도, 배리 화이트 배경음악도 없었다. 내가 사정하고 나면 우리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이디는 침대에 누워 정자가 난자에 닿을 가능성을 높이려고 엉덩이를 조금 들고 있었다. 레드 제플린을 틀어놓고(하이디는 레드 제플린 커버 밴드 싱어다) ‘사인필드’ 재방송을 켜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테이크아웃 중국 음식통을 손이 닿는 곳에 두었다. 세 번째 시도만에 하이디는 임신했다. 새우 찐만두, ‘스테어웨이 투 헤븐’, ‘사인필드’가 임신에 효과가 있었나 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임신 기간 내내 나는 하이디 뱃속에 있는 아이의 초음파 영상이 내 아이라는 사실에 외경심을 느꼈다. 집에서 임신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다. 주중에는 하이디가 주로 아기를 돌보고, 주말에는 내가 집에 데리고 오고, 비용은 분담하고, 셋이 함께 보내는 ‘패밀리 데이’를 일주일에 하루씩 두기로 정했다.

COURTESY OF DAVID ARRICK

2010년 9월에 우리 아들 너새니얼 체이스가 태어났다. 라마즈 수업을 잡아두었지만 그 전에 태어나서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하이디는 자신있는 챔피언처럼 자기 자신과 신체의 자연스러운 기능을 능수능란하게 조화시켰다. 나는 계속 옆에 붙어서서 응원하고, 도움이 될 때는 무릎을 잡고, 간호사가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면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네이트가 태어나자 우리는 아이를 반겨주기 위해 즉흥적으로 ‘라이언 킹’에 나오는 ‘서클 오브 라이프’ 장면을 재현한 다음 병실로 중국 음식을 배달시켰다.

우리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부모로서 우리의 상황은 ‘전통적’으로 간주되는 방식으로 부모가 된 사람들에 비해 다른 점보다는 닮은 점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공동 육아 이야기가 매체의 관심을 끌어, 우리는 NBC, CNN 등에 출연했다. 우리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대안 가족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수많은 부모들이 매일 하듯, 우리는 우리가 그저 아이를 이끌고, 가르치고, 사랑하고 키우는 엄마 아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섹슈얼리티, 싱글 맘이 되기로 한 하이디의 선택은 육아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우리 정체성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부모로서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그건 아니다.

게이 남성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최소한으로 말한다 해도 흥미로웠다. 첫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들이 경험하는 전형적인 일들을 잔뜩 겪는 동시에, 다른 아빠들이라면 처하지 않을 상황에 자주 처했다. 2012년에 스타벅스에서 좋은 의도를 품은 할머니 같은 분이 내게 다가와 최근 2년 동안 나 혼자 네이트와 있을 때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쉬는 날인가요?  베이비시팅 맡았어요?” 안타깝게도 하필 그 날따라 나는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내게 비슷한 질문을 했던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답을 해버렸다. “난 게이예요. 내 아이의 다른 부모가 여성인지, 엄마가 있기는 한지 어떻게 아시죠?” 그 여성의 얼굴은 들고 있던 라테의 거품보다 더 하얘졌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남성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본 것이 전적으로 그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윗 세대라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만족감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남성 혼자 아기를 데리고 있으면 그건 곧 베이비시팅이거나 엄마가 없어서 잠시 맡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라 본다. 남성도 육아를 한다. 자기 아이를 보는 아빠가 베이비시터는 아니다.

어느 날엔 게이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는 쓰리섬을 하러 가는 길이라며, “토요일 밤에 집에서 아기랑 있으면서 네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봐! 너 대체 언제 다시 외출할 수 있는 거야?”라고 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쓰리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행복하다고, 토요일 밤에 나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꼬마에게 집에서 ‘굿나잇 문’을 읽어주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건 없다고 왜 그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단 말인가.

내 가족은 나의 모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경험에 감사한다. 특히 하이디에게, 함께 부모가 됨으로써 가장 친한 친구에서 더욱 풍요롭고 깊고, 예전보다 더욱 큰 신뢰와 존중을 가진 사이가 될 수 있게 해준 하이디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네이트를 각자의 집에 규칙적으로 둘 수 있도록 애쓴다. 매일 연락하고, 함께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모두가 우리를 지지하는 건 아니고, 비열한 여성혐오 및 동성애혐오 발언 등 여러 힘든 일도 겪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고, 우리는 그런 추한 잡소리를 걸러내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법을 익혔다. 네이트를 키우기, 서로 사랑하는 현대적 가족의 긍정적 사례가 되기. 바로 그게 가장 중요하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