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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21일 11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21일 11시 06분 KST

(자본주의적)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

뉴스1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6월 20일 밤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실시된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돼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huffpost

제목을 뽑아놓고 보니 ‘자본주의적’이 가족을 수식하는지 또는 사랑하는 방식을 수식하는지 잘 모르겠다. 괄호로 묶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읽었으면 한다. 괄호로 묶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자본주의적에 뭔가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데 마땅치가 않다. ‘천민’을 붙여야 할까 또는 ‘유교 가부장제’를 붙여야 할까 아니면 ‘세습’을 붙일까 망설이다가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고 시작한다.

이 칼럼의 모티브가 된 첫 이야기는 친척들 모임에서 가십거리로 등장했다. 그저 웃픈 이야기로 넘겼을지도 모르는데, 연이어 이슈가 된 가족들 이야기 때문에 전면에 배치하게 되었다. 그날 모임에 안 나온 ㅍ의 근황이 화제였다. “ㅍ 이야기 들었어?”가 시작이었다. “아니, 무슨 얘기?”, “ㅍ이 갑자기 시부모 잘 모시는 효부로 등극한 모양이야.” 순간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안 와서 귀를 기울였다.

ㅍ은 시가와 그렇게 사이좋은 관계가 아닌데 갑자기 웬 효부로 소문났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속사포로 얘기를 쏟아냈다. 글쎄 ㅍ이 얼마 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시아버지를 자기 집으로 모셔 극진히 돌보면서 “아들아,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 할아버지를 1년 반은 살아 계시도록 책임지고 돌볼 테니 너는 절대 걱정하지 마”라고 자기 아들한테 했다는 말을 억양까지 흉내내면서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부연설명을 들었다. 시아버지가 1년 반을 더 살면 그 아들이 내는 세금을 최소 5억 이상 절약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누군가 그 정도면 절세 광고의 카피로 써도 되겠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가 머리에 남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항공 재벌들의 ‘어처구니없는 갑질’에서 불려나온 그들의 가족사랑 방식에 덜 주목했을지 모른다. 분노조절 장애라는 병명을 전국민에게 유행시킨 대한항공 총수 일가 갑질에서 소환된 가족 호칭은 다양했다. 총수 부인 이명희씨가 집의 바닥에 설치해 놓은 조명등 일부가 고장 난 것을 발견하고 “금쪽같은 내 새끼가 화장실 가다 넘어지면 책임질 거냐 이 ××야”라는 욕설에서 소환된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가족 호칭어부터 조양호 회장의 사과문에 등장한 ‘제 여식’의 미숙한 행동이라는 점잖은 가족어와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한 ‘애비’로서라는 낮춤말까지. 사랑이 넘치는 가족 호칭이 불려나왔다.

뉴스1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이 7월 4일 서울 중구 금호아시아나 본관에서 '기내식 대란'에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승강기에 탑승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또 다른 항공 재벌 아시아나 또한 기업 갑질이 한창 문제일 때 자녀 사랑을 과시했다. 기내식 차질로 항공기 결항 사고가 잦고 시끄러울 때 박삼구 회장은 별 경력이 없는 딸을 상무에 앉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는데, 기자회견 자리에서 “딸이 오랫동안 일을 쉬었는데, 이제는 사회생활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예쁘게 봐 주세요”가 그 답이었다. 곧이어 기내식 파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당 최고경영자(CEO)를 인사 조처하고 그 자리에 아들을 앉히는 인사를 단행했다. 언론들은 ‘잡음’과 소요를 기업의 3세 승계로 묶어낸 ‘신의 한 수’라는 표제를 달아주었다. 이들에게 가족과 기업의 경계는 없다.

국민적 열패감에 빠져 있을 때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아버지 때문에” 서울에 다니러 왔다면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아들 넷에 고명딸인 친구는 내 주변에서 보기 드물게 부자 아버지를 두었다. 아버지 재산이 몇백억은 되느냐고 물었더니 모르긴 해도 주식과 건물 등을 합치면 한 단위쯤 위라고 했다. 그럼 자녀들 간 유산 싸움은 불 보듯이 환하다. 문제는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기도 전에 일어난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뉴욕에서 들었을 때 의사 소견으로 가능한 한 빨리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는데 오빠들이 시간을 끌어 이틀이 지난 후 병원으로 모셨다. 아버지는 겨우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 필담만 가능한 상태인데 이틀이라는 시간만 끌지 않았다면 훨씬 양호한 상태로 회복하셨을 거라면서 오빠들은 그냥 그대로 가셨으면 한 것 같다는 심증을 떨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큰 재산을 이미 증여받은 오빠는 병원에 모습도 안 보이고 자기가 수소문해서 비싸지만 편안한 요양시설을 알아 왔더니 남자 형제들이 네가 알아볼 일 아니라고 밀어낸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딸한테는 아직 아무것도 증여하지 않았다. “우리 집 재산을 왜 남의 집에 주느냐”고 출가외인인 딸은 증여 대상으로 취급도 안 하셨다. 가족법이 바뀌어서 아버지 유산은 아들딸 균분상속하면 된다고 사무적으로 알려줬더니 아들들한테만 가도록 이미 처리해 놓았을지도 모른다면서 “우리 아버지 못 말리는 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친구의 못 말리는 아버지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내 칼럼의 글거리는 충분해졌다. 그런데 그냥 넘길 수 없는 목사님의 아들 사랑 이야기가 더해졌다. 끝없이 더해질지도 모르겠다.

명성교회 홈페이지
김삼환 목사

 

‘명성교회 부자세습 논란’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목사님들의 유별난 아들사랑, 왜?’ 같은 기획기사도 눈에 띄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교회를 형식상 분리시킨 후 다시 통합해서 아들, 사위, 손자에게 물려주거나, 또는 친한 목회자끼리 서로 목사 자리를 바꾸는 교차세습까지 웬만한 재벌가 세습 못잖은 전략과 꼼수가 난무하는 모양이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지금까지 공식 확인한 세습교회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바로 이어지는 부자세습이 98곳, 사위나 손자 등으로 넘어가는 변칙세습이 45곳이다. 거의 모두 초대형 부자 교회들이다. 기독교 전문 온라인 매체 <뉴스앤조이>는 모두 364개 교회에서 세습이 이뤄졌다고 집계했다.

세습반대연대의 한 실무자는 그 이유를 묻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주 짧게 “돈이죠”라고 답했다. 그 윗세대들이 한국 문화 특유의 ‘가족주의’를 꼽았는데 젊은 활동가의 정리가 훨씬 간결하다. “돈 때문에” 상속과 세습으로 얼룩진 한국 교회가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부자 교회가 점점 대형화되면서 교회 양극화가 심해졌을 때 이미 위기에 들어섰다.

우리 주변에서 흔치 않게 주워들을 수 있는 이른바 ‘유산계급’ 가족들 이야기를 주워 모아 써보니 코믹하지만 암울하다. 금세기 불평등의 미래에 대한 탁견을 보여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서 주요 논지를 빌려오지 않아도 우리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는 결코 좁혀들지 않을 것 같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서평과 해설이 넘쳐나서 여기에 어떤 해석과 해설도 덧붙일 필요가 없지만 꼭 인용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유럽의 지난 200년의 상속세 자료 분석에 동원된 깨알 같은 수치와 엄밀한 수식과 그래프 틈새에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과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끼워 넣은 구절들이다. 가족과 연애와 결혼이 당시 영국과 프랑스 사회 상속제와의 연관성을 실감나게 이해하게 했다.

어떤 경제학자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복잡한 수식 때문에 경제학 지식이 없는 아내가 읽기는 힘들 거라는 친절한 주해도 붙여주었던데 <고리오 영감>과 <이성과 감성>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웬만한 경제학자보다 피케티의 핵심 주장을 더 확실하게 간파할지도 모른다. 선진국들이 상속된 ‘부’가 지배하던 19세기 말로 돌아가고 있는 데 대해 심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 점에서는 선진국 대열에서 낙오할 것 같지 않다.

친기업 학자들과 언론들이 우리의 최고 상속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높다며 은근히 피케티의 논지를 깔아뭉개지만 계급 양극화 속의 ‘가족사랑’은 우리의 미래를 오싹하게 한다. 더 간결하게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이토록 불공평한, 아니 점점 더 불공평한 출발점에서 시작한다면 그들의 미래가 어떨지 상상조차 힘들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비정한 세계 속의 은신처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더 비정한 소우주가 되는 것은 아닐까 질문해본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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