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11월 13일 14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13일 15시 02분 KST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인도 히말라야 여성들의 아이스하키 선수 성장기' (르포)

스틱과 신발은 기부받았으며, 아이스링크는 영하 20도의 날씨에 공터에 물을 뿌려 직접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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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레에서 열린 IHAI 내셔널 여성 챔피언십 경기 모습

라다크2013년 겨울밤, 인도 북서부 라다크 지방의 학생 교육과 문화 운동(Students’ Educational and Cultural Movement of Ladakh, 이하 SECMOL) 소속인 리그젠 양돌(Rigzen Yangdol)과 또래 십여 명은 옷을 단단히 입고 매섭게 추운 히말라야의 야외로 나왔다. 이 학생들은 본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화장실에서 양동이에 물을 채워 내리막길로 가 공터에 뿌렸다.

3시간 뒤 자정이 되자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 나이인 여성들은 다시 양동이에 물을 담아가서 미처 메꾸지 못한 곳에 뿌렸다. 기온이 –20°C까지 떨어지는 새벽 2시에 또 한 번 물을 뿌리러 갔다.

땅 전체가 얇은 얼음으로 뒤덮이고 나서야 그들은 마침내 잠자리에 든다. 해가 뜨면 그들은 기부받은 하키 스틱을 들고, 기부받은 신발을 신고, 작은 골대를 직접 만든 아이스링크 양쪽에 놓는다. 리그젠이 SECMOL에서 보낸 첫 겨울 이후 상황은 좀 나아졌다. 이제 수도관을 설치해서 물을 뿌린다.

“꽤 힘들었다.” 현재 23세인 리그젠은 공터 옆의 통나무에 앉아 그때를 회상했다. 손에는 작은 검정색 수첩을 들고 있다.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앤드류 페런스의 사진이 표지에 붙어있다. 겨울은 지나갔고, 즉석 축구 경기가 방금 끝났다. 요즘 리그젠과 동료들은 캐나다인 코치의 지도를 받는다. 이중 상당수는 SECMOL 아이스하키 클럽 선수인 동시에 인도 여성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소속 선수이기도 하다.

인도 인구는 14억명이지만, 인도 여성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는 전부 라다크 출신이다. 라다크는 가장 눈이 많이 올 때는 비행기 외의 수단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가 50만 명도 안 되는 지역이다. 얼어붙은 연못에서 빌린 장비로, 수십만 정도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성장한 선수들이다. 이 지원금은 인도 줄넘기 연맹이 받는 것보다도 적은 액수다.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급의 아이스하키 선수 중 주로 야외에서 연습하는 선수들은 많지 않다. 해발 12000피트(약 3658미터)에서 연습하는 선수들은 더욱 드물 것이다. 얼음을 직접 얼리는 경우는 더더욱 희귀하다. 그래서 2017년 이 팀이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이스하키 토너먼트에서 몇 번 승리를 거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선수, 심판, 관객들 모두 인도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라다크에서 조직적으로 여성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지 불과 15년 된 해였다. 선수들 대부분은 자연적으로 언 얼음 위에서 연습했는데, 얼음이 어는 기간은 단 두 달에 불과하다. 하지만 2승을 거두자 이 팀은 국제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월에 그들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만났고, 올림픽 아이스하키 금메달 4관왕 헤일리 위켄하이저가 장비를 들고 찾아가 조언을 건넸고, 수많은 온라인 뉴스 사이트들이 라다크로 가서 인도의 신데렐라 팀을 세상에 소개할 영상을 찍었다.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풀뿌리 수준의 인도 스포츠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상황을 뒤집고 싶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뒤집을 수 있다.” 스포츠 저널리스트 샤르다 우그라의 말이다. “무(無)에서 이런 경쟁력있는 아이스하키팀을 만들어냈다. 우리에겐 링크조차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는 이유로 밀어붙였다.”

 

불확실한 투자

어디에서나 그렇듯, 인도의 여성 스포츠는 남성 스포츠의 그늘에서 자라났다. 20세기 전반에 윔블던에서 경기한 백인 인도 여성이 몇 명 있었고,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최초의 인도 여성 수영·육상 선수가 출전했다. 이제까지 인도가 하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 28개 중 5개는 여성이 딴 것이다. 남녀 선수 모두 지원금을 받고 출전 기회를 얻으려면 정부와 종목별 연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깊이 새겨진 또 하나의 두꺼운 벽을 뚫어야 한다.

“사회 상당 부분에서 여성의 성장 패러다임은 결국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이 여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델리의 젠더 및 스포츠 연구자 마두미타 다스의 말이다.

라다크는 인도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젠더 평등이 많이 이루어진 곳이지만, 스포츠, 일, 가족을 모두 병행하는 여성 롤 모델은 드물다.

“자신의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의 200%를 쏟아붓는다.” 다스가 여성 스포츠 선수들에 대해 한 말이다. “그들은 당신의 투자가 중요하다, 당신의 투자가 이익이 남는 투자라는 것을 언제나 증명해야 한다.”

 

초기

MEPHAM
라다크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위한 최초의 수업 당시 찍은 사진 

라다크에 겨울이 찾아오면 인도 다른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폐쇄되고, 레(Leh) 외곽의 구푹스 호수, 레 중심부의 카르주 호수는 얼어붙는다.  

“크리켓도 축구도 못 한다. 아이스하키가 유일한 선택지다.” 라다크 지역 아이스하키 경기 대부분을 조직·감독하는 동계 스포츠 클럽의 지그멧 앙추크(Jigmet Angchuk) 서기장의 말이다.

이 스포츠가 어떻게 라다크에 전해졌을까? 라다크 최초의 아이스하키 선수 중 아직 생존해 있는 마지막 사람인 전직 군인 톤장(Tonzang)이 들려준 바에 따르면, 1969년경에 군인들이 군대 창고에서 칼날이 달린 이상한 신발을 발견했다고 한다. 가게 주인이 ‘그걸 신고 얼음 위를 다닐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는데, 바보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칼이 얼음을 벨 것이고, 신은 사람은 물에 빠지게 될 것 아니겠는가.

“나는 그에게 이건 멋있는 문손잡이일 것 같다고 말했다.” 톤장의 말이다. 하지만 스케이트를 신은 사람의 사진을 책에서 보고 나서 군인들도 이해했다.

그래서 톤장과 동료들은 피겨 스케이트 날을 구해서 군화 바닥에 달고, 필드 하키 스틱과 공을 구했다. 그들은 1972년에 중국 국경 근처에서 군대 여단 간의 토너먼트 시합을 열었다. 8년 뒤 첫 민간인 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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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경기 연습 장면 

“그때 우리는 룰을 몰랐다. 우리에게 장비가 없다는 걸 고려해서 룰을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골키퍼는 안전을 위해 크리켓 패드를 쓰기 시작했다.” 적절한 패드와 헬멧 착용을 의무화한 것은 현재 67세인 톤장이 은퇴했던 2006년부터였다.

라다크 동계 스포츠 클럽에 따르면 라다크 청소년 중 약 1만~1만2천 명이 어떤 형태로든 아이스하키를 한다. 매년 1월 열리는 최대 규모 경기에서는 수천 명의 관객이 카르주 연못에 모여들고, 더 잘 보려고 나무에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매년 캐나다에서 장비와 코치를 보낸다. (비교적 부유하고 아이스하키를 사랑하는 캐나다에서는 선수들이 장비를 한 번 사용한 다음 라다크 같은 곳에 기부한다는 루머가 있다.) 데라둔에 있는 인도 유일의 풀스케일 아이스 링크는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당국의 주장에 따라 몇 년 전 폐쇄되었다. 잠보니(Zamboni)라는 이름의 정빙 기계로 다듬은 아이스링크의 얼음은 호수의 얼음과 다르다.

 

인도 국가대표팀

남성팀이 최초로 국제 시합에 나가고 7년 뒤에 인도 아이스하키 연맹은 여성팀을 시험해 보았다. 그들은 라다크에서 선수들을 모집했다.

체탄 돌마(Tsetan Dolma)는 SECMOL에 있다가 첫 국가대표팀 선수로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농담하지 마.’라고 답했다.” 경험이 거의 없는 20세 선수가 뽑혔을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고, 체탄도 똑같이 대답했다. “농담하지 마.” 지금 23세인 체탄은 겨우 그 말을 믿게 되었다. 2년 동안 아이스하키를 해온 라이트 방어수 체탄은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IIHF) 2016년 아시아 챌린지 컵에 출전했다.

하지만 인도 여성 아이스하키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인도의 가장 외딴 지역 중 하나인 라다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선수들이라, 상당수가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몇 명은 타이베이에 가지 못했다.

체탄은 SECMOL의 멘토들에게 도움을 받아가며 부랴부랴 여권 발급 준비를 했다. 관공서에서 며칠씩 보내야 했다. 미니 링크에서 연습하러 팀이 델리에 갔을 때야 받을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여권 9개를 받아냈다. 인도 역사상 최대의 기록이다.” 하르진더 싱(Harjinder Singh) 아이스하키 연맹 회장의 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보는 것이었다. 풀스케일 링크의 크기를 보고 이들은 놀랐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선수들은 라다크의 비공식 룰에 익숙했다. “나는 아이스하키를 할 줄은 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선수로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IIHF의 룰과 규정은 몰랐다.” 인도팀은 총 네 번의 경기를 펼치며 룰을 익혀가야 했다.

얼음 그 자체도 난관이었다. 매끈한 인공 빙판 위에 올라가자 21명의 노련한 선수들은 초보자처럼 미끄러지고 넘어졌다. “먼저 우리는 얼음 위에 있는 법부터 익혀야 했다. 굉장히 미끄러웠다. 얼음이 너무 달라서 스틱으로 플럭을 맞출 수도 없었다.” 골텐더 누르 자한(Noor Jahan)은 스틱이 부러지자 대만 선수에게 장비를 빌려야 했다. 블로커에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났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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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챌린지컵에서 베스트 골텐더로 선정된 누르 자한. 

라다크에서 처음으로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린 지 14년 뒤인 2016년 3월 22일, 인도팀은 5개국이 참가한 아시아 챌린지 컵에 출전했다. 디스켓, 체탄 등은 싱가포르에 8-1로 대패했다. 다음 날 태국이 이들을 12-1로 꺾었다. 디스켓이 다리를 다쳐 뼈에 금이 가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정말 안 좋았다.” 디스켓(Disket)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리고 사람들이 다치니까, 정말 울컥했다.”

다음 날 타이베이 팀이 13-0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3월 25일 경기는 그래도 나았지만, 말레이시아에 6-3으로 졌다. 총 36실점, 8득점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다리 부상 이후 “엄마가 더 이상 아이스하키를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너무 우울했다. ‘젠장, 이래서는 안 되는데.’ 엄마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제발, 제발 이러지 마세요.’”

 

소름 돋는 순간

선수들은 그래도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최소한, 돈과 장비로 지원해준 사람들에게 보답은 해야 했다.

다음 몇 달 동안, 디스켓은 다리가 나으면 다시 운동하게 해달라고 어머니에게 빌었다.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싸우고, 코가 부러지고 피투성이가 되는 영상을 보내기까지 했다. 다른 선수들이 더 끔찍한 부상을 입는 걸 보라는 뜻이었다. 2016년이 흘러가며, 디스켓은 서서히 어머니를 설득시켰다. “마침내 엄마는 ‘그래, 어떻게 되나 보자.’는 식이 되었다.”

타이베이에서의 대패 이후, 팀은 룰과 사소한 것들을 익혀갔다. 스케이트 조이는 법, 패드와 헬멧을 제대로 쓰는 법(일부는 남성 선수들에게서 빌렸다) 등이었다. 인도 아이스하키 연맹은 레의 호수와 델리의 작은 링크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크라우드펀딩, 선수단 갹출 등의 돈으로 팀은 북쪽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미끄러운 얼음을 갖춘 풀스케일 링크에 연습하러 갔다. 남성팀은 1개월 동안 쿠웨이트 경기를, 여성팀은 반 개월 동안 태국 경기를 준비했다.

2017년 아시아 챌린지 컵에는 7개국이 참여했다. 아랍 에미리트가 첫 경기에서 6-4로 승리했다. 다음 날 인도는 필리핀에 1-0으로 뒤진 상태로 세 번째 피리어드를 맞았다. 양 팀은 계속해서 골을 주고받았고, 라다크 선수들은 4-3으로 경기 종료를 맞았다. 디스켓은 스틱을 번쩍 치켜들었다.

“현실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최소한 한 번은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실제로 승리했다.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1년 뒤에도 이 승리의 의미를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 디스켓은 몇 번이나 말을 멈추곤 했다. “우리가 그때까지 겪어왔던 모든 비판, 모든 힘든 노력, 고통, 어려움이 다 쏟아져 나왔다.”

이번 눈물은 행복의 눈물이었다. 디스켓은 심판과 심사위원들도 울었다고 기억한다. 국가가 나올 때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 세상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국기만 봐도 눈물이 났다. 그때 모든 사람이 ‘와, 저 여성들 놀랍네.’라고 생각했다.” 체탄의 말이다.

다음 날은 인도 시합이 없었지만, 곧 국제 대회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뉴질랜드, 태국, 싱가포르에 연달아지며 39실점과 3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방콕에서 열린 마지막 시합에서 말레이시아를 5-4로 꺾어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었다. 정말 아슬아슬한 시합이었다. 인도가 1점 앞선 가운데 경기 종료까지 11초 남은 상황에서 말레이시아는 골텐더까지 공격수로 투입했으나 소용없었다. 마지막 호각이 울렸을 때, 그들은 국가를 한 번 더 듣게 되었음을 알았다. “소름 돋는 순간이었다.” 한 선수의 회상이다.

디스켓은 코치가 꼽은 챌린지 컵 인도 대표팀 최고의 선수였다. 어머니의 지원이 확고해졌다. 디스켓은 상패를 어머니에게 드렸다. 레에 있는 그들의 집 장식장엔 상패가 계속 늘어갔다.

SAM GOLDMAN
레에 있는 디스켓의 집 장식장. 

국제적 관심

팀이 레의 쿠쇽 바쿨라 림포치 공항에 내리자마자 축하가 시작되었다. 친구, 가족, 팬들이 1층짜리 공항 터미널 입구에 몰려들었다. 선수들이 사는 여러 마을에서도 축하 행사가 또 열렸다.

이번 성공으로 새로운 팬층이 생겼다. 국제 대회에서 두 번 승리를 거두자 지역 경기 관객이 크게 늘어, 남성 아이스하키 경기 수준으로 올라갔다. 제대로 된 연습 시설도 없고, 이웃과 오빠의 장비를 빌려 쓰고, 예산도 부족한 젊은 여성팀이 국제 대회에서 2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서구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다. 짤막한 소개 기사들이 나왔고, 선수들이 구푹스 연못의 거친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짧은 영상들이 만들어졌다. 올림픽 금메달 4관왕 위켄하이저, 최근 은퇴한 미국 하키 리그(NHL) 선수 앤드류 페런스가 매년 기증할 장비를 가지고 찾아오는 캐나다 코치들과 함께 라다크로 왔다.

인도 아이스하키에 주어지던 국제적 관심은 갑자기 남성팀에서 여성팀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인도 아이스하키 연맹의 싱 회장은 이 변화가 아이스하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남성 아이스하키도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남성팀은 군기가 잘 잡혀있다. 그들은 자기 돈을 쓰며 운동해왔다. 하지만 여성팀은 그러지 않았다. 언제나 주는 것을 받아왔다.”

2월 인도를 방문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델리의 테니스 코트에서 여성팀을 만났다. 총리의 아들이 선수들과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 “인도 여성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장벽을 허물고, 도전에 응하고, 소녀들에게 모든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트뤼도가 그날 쓴 트윗이다.

“레에 NHL 선수가 오리라고는 우리 중 아무도 상상도 못 해봤다. 인터넷에서 매일 보는 사람이 당신이 사는 동네에 당신을 가르쳐 주러 오고, 정말로 그들이 왔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디스켓의 말이다.

하지만 트뤼도와의 하이파이브를 한 달 남짓 남겨두고 레에서는 아이스하키가 중단되었다. 레 지방 정부의 소남 다와 론포(Sonam Dawa Lonpo) 최고의원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다. 지역 토너먼트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모든 공식 행사가 취소되었다. 연습도 중단되었다. 키르기스스탄 재방문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들은 훈련을 거의 하지 못한 채 2018년 챌린지 컵이 열리는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실전을 치르며 감각을 되찾아야 했다. 1차전에서는 아랍 에미리트에 6-1로 패했다. 다음 날은 개최국 말레이시아가 5-0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이틀 뒤 마지막 경기에서는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던 국가인 필리핀과 맞붙었다. 첫 피리어드는 2-0으로 앞서갔다. 하지만 필리핀이 6점을 거두며 경기를 뒤집었다. 디비전 동메달이 걸린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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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 챌린지컵에 참여한 인도팀 선수들 

“이 여성들은 하키 실력을 키워야 한다.” 스포츠 클럽의 노니 왕초크(Noney Wangchok) 총무는 레에서 가장 좋은 호텔 로비에서 나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스포츠계는 더 이상 이들에게 ‘아이스하키를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아직 그들에게 요구되는 수준은 높았다. “그들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는 말끝을 흐렸다. “어쨌든 여성은 여성이다.”

하지만 이들은 실망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고 시를 쓰면서도, 탁구를 치고 짓궂은 왓츠앱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새로운 ‘오프 아이스’ 훈련 방법으로 이틀에 한 번씩 훈련하는 선수들이 많다. 어려운 기술을 연습하고, 해발 3600미터 높이에서 심장 강화 운동을 한다. 그들은 겨우 몇 달 동안 겨울 훈련을 하고 2승을 거뒀다면, 아시아 챌린지 컵 우승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대만팀, 싱가포르팀은 강하다.” 2016년 컵 이후 은퇴한 스탄진(Stanzin)의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상대로 이기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우린 할 수 있다.”

 

미래를 향해

스탄진의 옛 동료들도 씩씩하다. 미래에는 심판이 될까 한다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코치들에게 자신감을 얻어서 스포츠계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길 바라는 선수들도 있다. 이미 마을들에서 캠프를 운영하고 있고, 70명의 아이가 다니는 곳도 있다. 한 선수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을 대체할 선수들을 키우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를 또 듣고 싶다. “국기를 예전에 있던 자리에 다시 놓고 싶다.”고 체탄은 말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라다크 밖의 사람들에게 ‘라다크에서 아이스하키를 한다’, ‘소녀와 여성들이 한다’ 는 걸 알리는 것이라고 선수들은 말한다.

젠더 장벽이 깨졌을까? 잘난 척하지 않는 이 선수들이 라다크의 어린 소녀들에게 롤 모델이 될까? 스탄진은 생각에 잠긴다. “그렇다, 그렇다. 찾아올 것이다-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가끔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몰라, 우린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디스켓의 말이다. 그렇지만 NHL 선수와 올림픽 금메달 4관왕이 그들이 사는 외딴 마을로 찾아왔다. 그리고 캐나다 총리가 당신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인도 아이스하키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아주 훌륭해질 거라고 정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디스켓의 말이다.

 

* 허프포스트 INDIA의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