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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19일 17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19일 18시 04분 KST

[화알못이지만 화장품은 사고 싶어] 빨간 립스틱을 사도 사도 또 사게 되는 이유

지금도 장바구니에 17개...

내 삶은 항상 불황기다. 립스틱을 경기 불황의 시그널로 취급하는 경제학에 따르면 말이다. 몇 개 사지도 않았는데, 카드 한도가 다 되어간다고 자꾸자꾸 메시지를 보내오니까. 국가 경제는 몰라도 확실히 내 가계 경제는 립스틱들이 보내온 시그널 때문에 찌릿하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패키징만 봐도 기분이 좋다!

몇 년을 니베아 ‘체리향 립밤’만을 바르던 여고생, 대학생 시절도 있었건만 어느 순간 립스틱에 눈을 뜨고야 말았다. 고백하건대 나는 화장을 1도 못 하고, 모르는 화알못이다. 그런데 립스틱만은 계속 늘어간다. 작고 예쁜 립스틱을 들어 올려 고 작은 것을 입에 문지르면 마음에 작은 행복의 파장이 일렁거려 안 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화장대 안에는 시험 삼아 한두 번 발라본 것이 전부인 립스틱들이 곽까지 그대로 동봉되어 잠들어 있다. 산 것보다는 지인들이 해준 ‘립스틱 선물‘이 대부분. “어울릴 것 같아 사 왔어”라는 말로 시작해 하나같이 ‘빨간’ 립스틱을 내미는데, 정말이지 미안하게도 어울리지 않아 바를 수가 없다. 왜 다 똑같은 빨간색인데 어울리는 것과 아닌 것이 극명하게 나뉘는 걸까?

입생로랑 신상품인 '볼륍떼 플럼프- 인 컬러' 중 03호 '인세인 핑크'와 06호 '루나틱 레드'

이번 ‘입생로랑’ 신상을 구매하면서 세상 아래 같은 빨강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이름은 ‘볼륍떼 플럼프-인 컬러’, 기존 립스틱 라인인 ‘루쥬 볼륍떼 샤인’ 과 흡사한 제형인데 립스틱 가운데 검정색 하트가 콕 하고 박혔다. 천연 페퍼민트 오일 성분이 들어가 있어 입술 주름을 펴주고 탱글탱글한 볼륨감을 만들어 준단다. 킴 카다시안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전 세계적으로 입술을 도톰하게 만들어주는 립 플럼퍼들의 인기가 매우 많은데, 입생로랑이 이를 캐치해 아예 립스틱에 해당 성분을 넣어버렸다. 샴푸린스, 스킨로션과 같은 올인원 제품처럼 ‘립스틱플럼퍼’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달까?

가운데 콕 하고 박힌 검정색 하트♥가 입술을 탱글탱글하게 만들어주는 플럼퍼다.

다만 본격적으로 라인을 출시하기에는 좀 망설여졌는지 ‘한정판’ 딱지를 붙여버렸다. 제품은 3월 1일 출시됐는데, 사람 많은 백화점이 싫어 연휴와 주말을 지나 매장에 갔더니 총 6개 제품 중 4개가 ‘sold oud(솔드 아웃)’ 돼 버렸다.

무서운 사람들...! 사람 눈 다 똑같다고, 예쁘다는 소문이 돌았던 04호 ‘딜리리어스 오렌지’는 옛적에 품절됐고, 남은 것은 03호 ‘인세인 핑크’와 메인 제품 중 하나인 06호 ‘루나틱 레드’뿐이었다.

살 수는 없지만 바르고 싶은 마음 아는가? 직원의 눈빛에선 ‘없어요. 손님’이라는 말이 들려왔지만, 그때만 해도 인터넷에선 모든 컬러를 살 수 있었고 지구는 하나임을 경험할 ‘직구’도 있었다. 품절된 컬러 하나하나 입술 시험대에 올려봤다. 그런데 어쩌면 모든 품절 컬러가 나와 맞지 않은 것인지! 구하기도 어렵다는 04호를 바르자마자 지금 막 점심을 먹고 나온 것처럼 입술에서 ‘총각무’ 빛이 돌았다. 다른 색상도 마찬가지였다. 

왼쪽이 03호 '인세인 핑크'이고, 오른쪽이 06호인 '루나틱 레드'다. 실제 색상과 가장 흡사하다.

내게 어울리는 것은 남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컬러들, 팔리지 않아 남아있던 그 두 색이었다. 마치 나의 선택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가지런히 서 있던 두 개의 컬러들은 내게 와서 꽃이 됐다. 집에 있는 수많은 ‘빨강이’들이 지나갔다. 수박색, 토마토색, 사과색, 석류색… 하지만 두 컬러는 집에 있는 그 어떤 것과도 같지 않았다. 아니 너무 달랐다. 이 빨강은, 그냥 다른 빨강이었다. 그리고 품절을 시켜줘야 할 것 같은 애잔함이 두 친구에게 있었다고 고백한다.

‘얘들아 우리 집에 가자.’

물론 형광등 밑에서 껍질을 까보고서 ‘이렇게 두 색상이 비슷했나‘, ‘내 눈에 뭐가 씌웠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잠깐 들긴 했다. 심지어 이 날은 미세먼지 ‘최악’이었던 날로 모든 사물의 색깔이 누리끼리, 노리끼리, 누루튀튀해보여서 빨간색마저 노래보였더랬다. 

미세먼지 필터 장착, 왼쪽이 03호 '인세인 핑크', 오른쪽이 '루나틱 레드'

품절 아닌 제품이 어울린다는 이유로 10만원을 날려버린 ‘호갱님(호구+고객님)’이 되기 일보 직전, 소비의 합리성을 찾아냈다. 먼저 입생로랑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발림성’이다. 이번 신상도 입생로랑 특유의 발림성이 눈에 띈다. 색상의 주 원료인 ‘코코넛 오일’에 플럼핑의 ‘페퍼민트 오일’이 합쳐져 더욱 진하고 부드럽게 발린다.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해 바른 후 입술을 위아래로 여러번 부딪쳐도 건조해지지 않는다. 또한 착색력이 있어 일하다 ‘김대리 어디 아파요?’라는 ‘아파보여’ 어택을 당할 일도 없다. 촉촉함과 착색력만으로도 색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를 뛰어넘을 만하다. 그리고 똑같은 색 두 개도 사는데?!

다만 오일이 많이 들어가면 당연히 발색력이 떨어지게 마련. 입생로랑은 이를 의식한 듯 ‘선명’, ‘강렬’이란 단어를 홍보에 주로 썼다. 하지만 그 말 무색하게 03호 ‘인세인 핑크’는 립밤에 가깝다. 굳이 비교하자면 디올의 립글로우와 비슷하다. 발색력은 꽝이라는 안타까운 이야기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발색 사진은 거짓이거나 아니면 100번쯤 바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입생로랑 미국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03호 ‘인세인 핑크’ 발색 샷. 거짓부렁쟁이들

반면 06호 ‘루나틱 레드’의 경우 홍보 문구 그대로 발색이 강렬하다. 제품은 어둡고 진한 빨강처럼 보이는데, 입술에서는 완전한 ‘수박색’으로 변신했다. 때가 어느 때인데 톤 타령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연한 빨강이나 분홍이 어울리는 ‘여름 쿨톤’이다.

여름 쿨톤의 최악은 ‘주황‘인데, 대학 시절 뭣 모르고 바비브라운의 ‘새먼(salmon, 연어)’을 발랐다가 황달에 걸린 아이처럼 다녔던 이후로 절대 바르지 않는 색이다. 빨간빛 립스틱이라 하더라도 주요 색상이 ‘주황’이면, 아무리 ‘물 먹은 레드’라고 홍보해도 내 입술에 와서는 ‘다홍색’으로 변했다. 앞서 말했듯 김치 먹은 색이 되기 일쑤였으며, 입술 어디에서도 여리여리한 복숭아는 발견할 수 없었다. 입술에 열이 많아서인가 고민도 해봤지만, 어쩔 것인가. 이렇게 태어난 것을.

왼쪽이 03호 '인세인 핑크'인데, 최소 20번은 발랐다. 덧바르고 덧바를수록 오일리해졌다. 오른쪽이 06호 '루나틱 레드'로 그냥 보기에도 선명한 레드라는 걸 알 수 있다.
위가 03호 '인세인 핑크'아래가 06호 '루나틱 레드'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수박색’을 찾게 되었다. 이름 마저 수박인 바비브라운의 ‘워터멜론‘, 수박색이라고 공식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맥의 ‘인세인리잇‘도 입생로랑 중 수박색이라고 일컬어지는 ‘루쥬 턱시도’도 나에게는 ‘토마토’ 색과 비슷해 포기하려던 찰나에 ‘수박색’을 찾게 된 것이다!

바르고 15분 정도 지나면 ‘핑크’ 컬러가 올라오거나 주황빛 도는 칙칙한 얼굴이 되지 않아도 되니 이런 감사할 때가 또 있겠는가. ‘립스틱의 신’이여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하늘 아래 같은 빨간색 립스틱이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색상은 없다는 것을. 공식 홈페이지와 타인의 발색샷은 절대 믿지 말 것이며, 하물며 같은 몸뚱이의 손등과 손목으로도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 되고 입술에 바르고 15분 후부터가 진짜 발색이라는 것도! 그렇다. 아이유의 말처럼 립스틱의 세계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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