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4월 05일 15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05일 16시 16분 KST

뉴질랜드가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를 법정에 세우는 방식

뉴질랜드는 테러범이 법정을 '무대'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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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테러의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크가 결심 공판에서 '백인 우월주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에게는 노르웨이 법정 최고형인 징역 21년형이 선고됐다. 5년마다 형량을 연장할 수 있는, 사실상의 종신형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2012년 4월24일.

2012년 4월에 열린 첫 재판에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화이트 파워’를 상징하는 주먹을 번쩍 치켜드는 제스처를 취하며 노르웨이 법원의 정당성을 공격했다. 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로 77명을 살해하게된 폭력적인 극단주의 음모론을 선동한 것이기도 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여름 캠프에 참석한 10대들이었다. 그가 법정을 무대로 활용할 의도르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당시 브레이비크의 테러 공격에 전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언행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재판 일부는 TV 방송으로도 중계됐다.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이 오슬로 법정을 채웠고, 트위터로 재판 내용을 업데이트했으며, 때로는 브레이비크가 한 근거없는 주장을 맥락없이 그대로 전하기도 했다. 마무리 진술에서 브레이비크는 45분 동안이나 횡설수설 연설했다. 이 연설은 훗날 백인 국수주의자들과 네오 나치 웹사이트에 올라와 칭송 받았다.

지난 달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반(反)무슬림 테러에서 50명을 죽이고 수십 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브렌튼 태런트 역시 법정을 자신의 연단으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이미 법정에서 백인 우월주의자 제스처를 한 바 있고, 변호사를 쓰지 않고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는 테러 직전 온라인에 올린 ‘선언문’에서 브레이비크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적었다. 태런트는 5일에 법원에 다시 출석한다.

지금 뉴질랜드 사법부는 전례가 없는 국가적 비극, 전 세계 미디어의 관심, 절차를 방해하기로 마음 먹은 듯한 피고인을 상대해가며 태런트를 적절히 재판하고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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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기난사 테러 다음날인 3월16일, 테러범 브렌튼 태런트가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 이후 그는 50건의 살해 혐의와 39건의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2019년 3월16일.

 

극단주의자를 재판에 회부하기

악명 높은 테러 사건 재판을 맡아본 법조인들에 의하면, 피의자들이 퍼뜨리고 싶어하는 극단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눈 앞의 범죄에 계속 집중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한다.

“피고가 프로파간다를 퍼뜨릴 기회를 주는 대신, 실제 기소된 내용만으로 사건을 한정짓는 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9/11 테러 설계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변호를 맡았던 제이슨 라이트의 말이다.

“이건 50명의 죽음과 이렇게 많은 부상자를 발생시킨 행위에 대한 유죄 혹은 무죄에 대한 재판이다. 법정에서는 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라이트의 말이다.

2012년 당시 노르웨이 검찰은 몇 달 동안 브레이비크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꼼꼼히 살폈다. 브레이비크가 유죄임이 명백하니 재판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살인 한 건 한 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밝히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스베인 홀덴 수석검사는 재판 절차에서 여러 살해 사건들을 뭉뚱거리고 넘어가거나 브레이비크의 잘못된 주장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건 피해자들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이며 음모 이론이 틀렸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노르웨이 법원은 대부분의 재판 과정에 대한 오디오 녹음 및 영상 촬영을 금지했으나, 법정 내에서 오간 발언은 언론이 보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브레이비크는 선동적 수사를 쓰고 자신의 범죄가 언급될 때 히죽히죽 웃는 등 법적 절차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려고 했지만 검찰은 법정이 다른 살인사건의 피고와 크게 다르지 않게 브레이비크를 대해야 하며, 법치가 지켜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홀덴 검사는 심지어 재판이 시작될 때 브레이비크와 악수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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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테러범에 대한 기소를 맡았던 스베인 홀덴 검사. 2012년 4월20일.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우리가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홀덴 검사가 했던 말이다. ”그저 복수심에 가득차는 게 아니라, 프로답게 할 수 있다는 것.”

뉴질랜드 당국은 테러 용의자가 크라이스트처치 재판을 연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 인물이 얻으려 하는 악명을 주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 저신다 아던 총리가 했던 말이다. ”그가 이런 극악무도한 테러 공격을 저지른 데에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우리는 그걸 완벽하게 저지할 것이다.”

법정 영상에서 태런트의 얼굴은 흐리게 처리됐다. 뉴질랜드 일부 언론들은 그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아던 총리는 절대로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가 하면 뉴질랜드 정부는 그의 ‘선언문’을 소유하거나 전달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최고 14년형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뉴질랜드 법에 따르면 법정은 태런트가 계속 스스로를 변호하겠다고 우길 경우 대기 변호인을 지명할 수 있다고 뉴질랜드 변호사협회는 밝혔다. 또한 피고가 재판을 방해할 경우 법정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피고가 증인에게 말하는 것을 금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브레이비크 재판은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법원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당시 정신 질환이 있는 한 남성은 법원 밖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치안 방해 전과가 있는 한 독일 여성은 브레이비크를 지지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가려 했으나 입장을 거부당했고 결국 출국 조치됐다. 피고측 변호인은 익명의 협박을 받았고, 시위자 4만 명이 모여 브레이비크가 싫어하는 민요를 불렀다. 법정 안에서는 피해자의 형제가 브레이비크에게 신발을 집어던지며 지옥에나 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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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2019년 3월23일.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하기

뉴질랜드 재판이 극단주의를 위한 메가폰이 되는 것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해자 만큼이나 피해자들에게도 초점을 맞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테러의 동기와 이데올로기를 밝혀내는 동시에 이것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초래했는지 보여줌으로써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게 목표다.

“몇 년, 몇십 년, 몇 세기 동안의 징역형을 내린다 해도 사랑하는 이를 다시 데려오거나 유가족들의 고통을 없애줄 수는 없다.” 라이트가 말했다. ”어느 정도라도 정의를 이루는 방법은 고통을 이야기하고 자비를 공유할 기회를 유가족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브레이비크 재판 당시 노르웨이 법원은 며칠에 걸쳐 생존자와 사망자의 친척들에게 증언을 들었다. 자녀를 잃은 부모들, 친구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본 10대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마와 같은 공간에 앉아있곤 했다. 아직도 뇌에 박혀있는 총알 때문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은 빌야르 한센은 한쪽 눈이 안 보여서 브레이비크가 앉아있는 쪽이 보이지는 않았다고 농담했다. 모든 증언은 브레이비크가 심으려 했던 공포와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상담은 테러의 정황을 더 정확히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가족 및 생존자들로 하여금 사법부가 테러의 사망 또는 부상 피해자 모두를 적절한 존중을 가지고 대함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 중요했다고 홀덴은 말했다.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발생 이후 그동안 뉴질랜드는 극우 극단주의를 규탄하고, 무슬림 커뮤니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또한 정부는 총기법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극단주의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테러 이후 가장 큰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태런트가 추가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이기도 하다.

“한 사회로서 이런 사람들과 행동을 어떻게 대하는지 온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므로 중요하다.” 홀덴이 말했다. ”이 사회가 용의자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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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생존자인 테멜 아타코쿠구(휠체어 탄 사람)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언론의 법정 내 사진 및 영상 촬영을 일체 불허했으며, 오클랜드 보안 교도소에 수감중인 피의자는 영상을 통해 재판에 참석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2019년 4월5일.

 

이날 재판부는 언론의 법정 내 사진 및 영상 촬영을 일체 불허했으며, 오클랜드 보안 교도소에 수감중인 피의자는 영상을 통해 재판에 참석했다.

AP에 따르면, 그는 재석 여부를 확인하는 판사의 물음에 답했을 때를 빼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조차도 ‘무음’으로 처리돼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기술적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일부러 소리를 끈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AP가 전했다.

재판부는 그가 재판을 계속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신감정을 의뢰한다고 밝혔다. 캐머론 맨더 판사는 이런 사건에서 정신감정은 일반적인 절차라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에는 20여명의 취재진과 60여명의 희생자 가족 및 시민들이 참석했다. 법정 사무관은 영어와 아랍어로 이들을 맞이했다.

 

* 허프포스트US의 How To Put An Extremist On Trial When The World Is Watching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