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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12일 17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12일 23시 09분 KST

아이유의 '페르소나'를 보고 너무 안타까워서 울었다

넷플릭스 제공

눈물이 났다. 이 시리즈에 들어간 자본과 시간과 재능이 아까워 눈물이 났다.

특히 가장 크게 기대를 걸었던 이경미 감독의 ‘러브 세트’가 아쉽다. 

아이유는 감독이라면 욕심이 날 만한 배우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솔로 가수라 뭘 하든지 미디어가 나서서 널리 알려준다.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이 좁다는 비판이 있지만, 반대로 캐릭터만 잘 맞아떨어지면 크게 한 방을 날린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얼굴에서 어른의 목소리가 나올 때면 매력이 폭발한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이 그런 케이스다.

배두나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역할도 입체적 인물로 연기해 내는 마력이 있다. ‘비밀의 숲‘의 한여진 역을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조연에 머무르는 또 하나의 ‘여성 형사’에 그쳤을 것이다.

감독 이경미는 천재다.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에서 보여준 그의 이야기 능력과 감성은 열심히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데, 근데 왜 이경미가 아이유와 배두나를 데리고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알겠는 구석도 있다. 한국 남자와 미국인 남성. 어린 여자와 어리지 않은 여자. 쨍한 오후의 테니스 코트. 배두나와 아이유 사이에 흐르는 묘한 성적 긴장감. 초록색 코트에 흐르는 신음 같은 기합 소리와 빨간 자두의 과육을 물어뜯는 빨간 입술.

아빠라고 부르지만 아빠인지 모르겠는 남자와 남자친구 아닌 외국인 갤러리를 옆에 두고, 아이유로 등장한 이지은이 어른 여자와 성적인 고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고착된 아이유의 처지를 읽어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게 다다. 굳이 숨겨진 코드를 읽어 내라면 읽어 내겠지만, 우리가 아이유와 배두나가 출연한 19분짜리 숨은그림찾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 않나? 상징 읽어 내기 게임은 영화를 보면서 읽어낸 의미들이 흘러가는 화면 안에서 이야기와 맞물려 다른 의미로 재조합될 때 아름답다. 아이유 페르소나의 첫 에피소드 ‘러브 게임’에서 그런 재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넷플릭스 제공

그래도 이경미의 ‘러브 세트‘는 눈을 뜨고 볼 수라도 있었는데 두 번째 에피소드인 임필성의 ‘썩지 않게 오래’는 눈을 뜨고 보기도 힘들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아이유의 캐릭터를 중년 남성과 엮은 이 영화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쾌하고 불쾌하다.

남성의 시점에서 줄거리만 요약하자면 어린 여자(아이유)에게 빠져 ”파혼까지 하고 달려간”(대사에 나온다) 남자가 어린 여자에게 차이는 날을 그린 얘기다. 영화 대사를 그대로 적어보면 아이유가 ”아무말 없이 갑자기 열흘 넘게 사라졌다가 나타나서 남자애들이랑 섬에 갔다느니 말도 안되는 얘기만 늘어놓고, 하루 종일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화장실 간다면서 딴 남자랑 키스하고 재미 없다며 먼저 가겠다”고 말하는 얘기다. 

영화는 나름대로 여러 장치를 쌓아 주된 이야기를 비틀려 시도한다. 그러나 실패했다. 물론 어떤 영화나 영화 전체를 샅샅이 살펴보면 미처 보지 못한 디테일 속에 감독의 속 깊은 뜻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는 찾고 싶지 않다. 격렬하게 찾고 싶지 않다. 찾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설득하는 것 역시 영화의 역할이다. 

관람자의 마음속에 깊숙하게 숨어있는 더러운 욕망을 건드려 불편하게 하고 그 욕망과 대면하게 하는 소설과 영화는 의미가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식으로 ‘불편한’ 영화가 아니라 그냥 지나치게 직선적인 상징과 이미지즘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괴작이다. 

그나마 ‘소공녀’ 전고운 감독의 ‘키스가 죄’는 캐릭터의 박력만으로 설득력을 획득한 수작이다. 아빠에게 키스 마크를 들켜서 머리카락이 잘린 채 집에 갇혀있는 혜복(심달기). 혜복의 집을 찾은 한나(아이유)가 친구가 받은 고통을 그대로 친구의 아빠에게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다.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는 마지막 작품으로 잘 어울린다. 죽은 여자친구와 꿈에서 만나 거리를 걷는 남자의 얘기가 그냥 차분하다. 록 밴드의 앨범에 꼭 한 곡씩 들어있는 발라드 넘버의 역할을 한다. 새로운 깨달음이나 극적 재미, 아름다운 영상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찾다 보니 20분이 훌쩍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