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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21일 15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21일 15시 52분 KST

34살 염호석의 꿈

서릿발 같은 분노를 기억하며 살아가겠다.

huffpost

“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입니다.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

유서의 주인공 염호석은 2014년 5월17일 강원도 야산, 자신의 승용차에서 발견된다. 사망 당시 34살. 그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 분회장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로 불렸던 그가 일한 센터는 하청업체였다. 삼성의 옷을 입고 매뉴얼에 따라 물건을 고쳤지만 그는, 그 회사 직원이 아니었다. 회사가 ‘12년 연속 서비스품질 1위’라며 연말 성과급과 배당금 잔치를 한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자기 몫은 아니었다.

20년 일한 노동자의 월급이 성수기에는 300만~400만원, 비수기에는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성수기에 밥은 고사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했다. 안전장비 없이 위험하게 일했다. 실외기 작업을 위해서 고소작업대를 불러야 하지만 설치 건수에 따라 급여를 받는 이들에게 안전은 사치였다. 2016년 에어컨 실외기 수리 작업 중 철제 난간이 무너져 추락사한 성북센터 진씨 일은 예견된 불행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시작은 대단하지 않았다. ‘점심시간, 8시간 노동시간 쟁취, 임금삭감 반대, 시간외근로수당 지급 등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시작됐다.

2013년 7월14일 노동조합을 설립, 신고했다. 회사는 노조 있는 센터의 일감을 다른 곳으로 빼돌려 임금을 깎는 괴롭히기를 시작했다. 천안센터 최종범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딸 돌잔치를 한 달 앞둔 아빠였다. 세계 일류 기업 로고를 달고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들을 괴롭힌 배후에 그룹 본사와 회사의 노조파괴 마스터플랜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직원은 되지 못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삼성의 관리를 받은 노동자 스스로 선택한 첫 죽음이었다. 회사는 최종범 사후 50일 만에 생활임금 보장과 노조 활동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노조 파괴를 멈추지 않았다. 노조 와해를 위해 기획 폐업을 하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본사 앞 상경 노숙 투쟁을 하고 돌아간 염호석이 죽음을 암시하고 사라진 배경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두번째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지는 무참히 짓밟혔다. 경찰과 회사는 노조장을 막고 가족장을 치르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경찰과 회사가 한 몸이었다. 경찰의 알 수 없는 지휘부부터 말단까지 일사불란하게 회사를 위해 일했다. 그들의 진술과 문서의 어디, 단 한 줄에서도 염호석이라는 한 인간의 고뇌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야만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오로지 그는 위험한 시신(屍身)이었고 죽음조차 빠르게 사라져야 할 망각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저희 **조합원의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계십니다.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협상이 완료되면 꼭 병원비 마련 부탁드립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 알려지지 않은 유서에 남은 다른 대목이다. 그는 죽음을 선택한 순간까지 동료의 병원비를, 삶을 걱정했다. 누구보다 간절히 살고 싶었던 34살 염호석을 읽었다. 회사와 경찰의 단 한 사람만이라도 유서를 제대로 읽었다면 그가 얼마나 따뜻한 피를 가진 인간이었는지 알았을 텐데. 작전을 수행하듯 그토록 모질고 빠르게 그를 불태워 동료와 친어머니에게서 뺏어 가지는 않았을 텐데. 단 한 사람이 그들 중에는 없었다.

그의 죽음 이후 진실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동료들은 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이제 그의 꿈은 이루어진 것일까? 모르겠다. 다만 노동자가 자신의 몸을 부숴 호소해야 할 만큼 그 회사에서, 아니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불온한 꿈이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걸 지키려다 사라지는 사람이 더 이상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 회사와 모든 업종의 담벼락을 넘어 노동조합이 꿈이 아닌 권리가 되는 날들이 오면 염호석과 최종범은 웃게 되려나. 염호석! 당신 죽음을 조리돌림한 세상에 대해 서 푼짜리 용서보다 서릿발 같은 분노를 기억하며 살아가겠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