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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28일 10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28일 10시 56분 KST

사실 '프로듀스 101'은 '진짜 사나이' 아이돌 특집이다

'진짜 사나이' 요식업 편도 있다

엠넷 캡처
huffpost

18세 소년의 눈물은 언제나 아저씨를 슬프게 한다. 엠넷의 간판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의 새 막이 올랐다. 이번에는 연습생 실력 등급 최하위인 등급인 ‘F’을 ‘X’로 바꾸고 〈프로듀스 X 101〉(이하 〈프듀〉)이라 이름 붙였다. 이 프로그램을 안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프듀〉 시리즈는 항상 소속사별 등급 평가로 시즌을 시작한다. 1~2화에 연습생들이 소속사별로 꾸민 무대를 보고 각 연습생의 춤, 노래, 랩 실력을 종합해 개인 등급을 나눈다.

그간은 A~F로 나눴다. 등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전체 무대에서 카메라를 잘 받는 위치에 선다. 카메라에 많이 잡히면 인기 투표에서 표를 많이 받는다. 표를 적게 받으면 탈락한다. 특출나게 잘생기고 귀엽고 매력 있는 애들은 실력이 없어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아도 표를 많이 받아 인기 투표에서 살아남는다. 결국 고만고만한 나머지 아이들에게만 실력과 카메라 노출 빈도가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잔혹한 ‘될놈될’(될놈은 뭘 해도 된다) 메커니즘까지 모델링 해놓은 생존경쟁 게임이다.

엠넷 캡처

악마의 기획, 사탄의 편집으로 유명한 엠넷은 이번 시즌에는 마지막 등급을 ‘F’ 대신 ‘X’로 바꾸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지수를 뜻한다’는 알량한 말장난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스타쉽의 연습생 송형준(18)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포장된 기준 미달자 그룹 X의 리더를 맡았다. 18살짜리가 지지리도 춤 못 추는 형들을 데리고 불과 며칠 만에 처음 들어보는 곡의 안무와 노래를 완벽하게 숙지하는 모습을 보는 게 이 프로그램의 재미다. 당연히 순조로울 리가 없어서, 애들이 혼도 나고 울고불고 싸우고 부둥켜안는데, 그래야 방송이 산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엠넷이다.

엠넷 캡처

최하 등급을 모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등급 평가 끝나고 대표곡(시즌 1 ‘픽미’, 시즌 2 ‘나야나’, 시즌 3 ‘내꺼야’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지마’)을 연습할 때면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장난하냐’다.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이 나왔다. X등급 안무 연습 도중 안무 숙지가 제대로 안 됐다는 이유로 댄스 트레이너 권재승은 “선생님들 앞에 놓고 장난하는 거야?”라며 소리를 질렀다. 결국 18세의 송형준이 울었고 나도 울었다. B등급 연습생들이 연습을 할 때는 보컬 트레이어 이석훈이 음역이 높아 노래를 못 부르고 머뭇거리는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황윤성에게 “X 등급 갈래?”라고 소리쳤다. 등급은 지들이 나눠놓고 X로 떨어지면 인생이 끝날 것 마냥 윽박을 지른다. X등급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올라가지 못하는 인생은 쓰레기 인생인 것 마냥 소리를 지른다. 결과는? 결국 X등급에서 최종 1명만 탈락하고 전원이 A~D에 편입됐다. 결과를 놓고 보면 엠넷에게는 그냥 소리지를 타이밍이 필요했을 뿐이다.

엠넷 캡처

이런 상황에 나와 내 아내만 쓰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프듀〉의 트레이너가 십대 소년소녀들을 모아놓고 자기 말을 안 들으며 세상이 끝날 것처럼 윽박지르는 상황을 ‘엄잡는다’고 표현한다. ‘근엄 잡고 앉았네’라고 말하다가 어느샌가 줄여서 ‘엄잡는다’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연습하던 아이가 좀 삐딱하게 서있었다고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너 내가 짝다리 짚지 말라 그랬지”라고 하는 상황이 딱 그렇다. ‘엄잡다’와 정확하게 같은 말이 바로 ‘군기 잡다’다. 생각해보면 〈프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잡아 애들을 울리고 엄잡아 애들을 연습시켜서 아무리 엄을 잡아도 쫄지 않는 아이돌 이등병으로 만드는 훈련소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정리해 놓고 보니 기획의도가 너무 〈진짜 사나이〉와 닮아서 놀랍다.

엠넷 캡처

그러나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볼 게 있다. 그래서, 〈프로듀스 X 101〉은 아이돌 진짜사나이라는 비판을 받고 사라져야 하는가? 〈프로듀스 X 101〉은 경쟁사회를 가속화하고 분노를 내재화 하는 나쁜 프로그램인가? 아니면 그저 누군가가 분노하는 걸 관망하거나, 동조하고 싶은 시청자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프로그램인가? 한때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이 시청률 17%를 넘겼던 걸 생각해보라. 최근에 종영한 〈진짜 사나이 300〉의 시청률이 한참 떨어져 7% 후반을 찍었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거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니 같은 콘셉트의 방송이 계속 만들어진다.

〈진짜 사나이〉 요식업편이라고 할 수 있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지난 주 여수 꿈뜨락몰 편에서 백종원이 꼬치집 사장에게 “노력 이전에 기본의 문제”라며 윽박을 지를 때 분당 최고 시청률 8.5%를 기록했다. 눈으로 보고 싶다면 ‘백종원’, ‘최고시청률’을 검색해 보시라. ‘백종원 분노에 최고 시청률’이라는 기사 리스트가 좌라락 펼쳐진다. 얼마 전 “방송에서 군기 잡는 거 좀 지치지 않니”라고 묻자 20대 후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후배는 “저는 오히려 애들이 화를 내도 열심히 안 해서 재미가 없어요”라며 “전 시즌 애들은 혼나면 밤도 새고 했는데, 이번 시즌 애들은 독기가 너무 없다”고 불평했다. 어쩌면 우리는 군대를 욕하면서도 군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부터도 매주 본방을 사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은 '힙합퍼'에 게재된 글을 편집한 블로그입니다.

네이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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