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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11일 12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11일 12시 09분 KST

서울 드랙퀸, 런던에 가다

퀴어 예술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Sangsuk Sylvia Kang
지난 5월 31일 열린 서울 핑크닷에서 무대 공연중인 제 모습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퀴어 아티스트 ‘히지양’인 동시에 2014년부터 무대 공연 및 길거리 공연, 시위를 펼쳐온 드랙 아티스트 ‘허리케인 김치’이기도 합니다. 저는 서울 출신이고, 서울에 거주함에 따라 그 동안 주로 국내에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런던대학교 초청 공연과 BBC 인터뷰로 시작되었던 저의 런던에서의 활동은 이후 꾸준히 이어져왔고, 올 7월에는 대영박물관에서의 토크 및 로컬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 공연과 전시들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글을 통해 저의 이야기를 조금, 그리고 런던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터울
지난 6월 1일 열린 제 20회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길거리 공연중인 제 모습입니다.

2016 12

영어로 된 한 통의 이메일이 왔습니다. 영국 런던대학교의 SOA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열리는 퀴어 아시아(Queer Asia) 학회에 와서 드랙쇼을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내에 저보다 인지도도 높고 공연 실력도 좋은 전업 드랙 아티스트들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연락이 온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사용하면서 활동을 해왔고, 해외 미디어와도 작업을 꾸준히 해 온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와 일본 여행을 갔던 것과 고등학교 졸업 여행으로 중국을 다녀온 것 이외에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고, 아티스트라는 직업에 딸려오는 넉넉지 못한 재정 형편상 해외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저에게 이 제안은 해외에 (더구나 런던에!) 다녀올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낸 후 저는 여행 경비를 모으고 공연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2017 7

히지양
첫 런던 방문에서 머물렀던 동네인 ‘엘리펀트 앤 캐슬’
히지양
더블 데커 버스 안에서 바라본 더블 데커 버스들.

말로 듣던 대로 런던의 물가는 정말 비쌌습니다. 다행히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2013년 어느 여름 밤 이태원의 한 게이클럽에서 만나 친구가 된 런더너(Londoner)인 마이크가 먼저 연락해 런던은 비싸다며 선뜻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제안해 준 덕분에 저는 숙박비를 굳히며 ‘엘리펀트 앤 캐슬’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동네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히지양
런던대학교 SOAS가 위치한 러셀 스퀘어에서 찍은 셀카.
Hsien Chew
퀴어 아시아 학회에서 허리케인 김치로서 공연중인 모습.
Hsien Chew
공연이 끝난 후 토크를 진행중인 모습.

학회 공연에서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팝송들 위주로 노래와 댄스 공연을 선보이면서도, 한국인으로서 초청받아 먼 길을 간 만큼 한국적인 요소를 공연에 끼워 넣어 보여주고자 케이팝 메들리 또한 공연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케이팝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2019년인 지금 만큼 높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겨주는 관객들이 그래도 정말 많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원래 엔터테이너로서 공연만 하러 갔었지만, 이 기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퀴어 예술 세계와 한국인 퀴어로서의 경험들을 나누고 싶었고, 그래서 공연 후에는 준비해 갔던 슬라이드와 함께 간단한 토크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평소 미디어 등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한국의 퀴어 예술, 그리고 한국 퀴어의 삶에 대하여 직접 듣게 되어서인지,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들이 큰 관심을 가져 주셨고 학회 운영진들께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에 더불어 공연자로서 학회 측에 대한 저의 배려와 이해, 양보를 높게 사신 학회 분들께서는 다른 분과 예정되어있던 BBC와의 생방송 인터뷰 기회를 저에게 넘겨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저는 이처럼 첫 런던 방문에서 애초에 제게 요구된 것보다 많은 것을 준비해 가서 해냈고, 그 결과로 제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왔습니다.

히지양
SOAS 건물에 있던 성중립 화장실 사인.
히지양
SOAS 인근에 위치해 있던 오랜 전통을 가진 퀴어 서점.

2018년 2월

히지양
여름과는 사뭇 다른 겨울철 런던의 모습

첫 방문에서 런던이 선사해 준 좋은 경험들과 즐거웠던 기억들을 쉽게 잊지 못해 반 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드랙에 초점을 맞춘 방문이 아니라 조금 더 학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방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아티스트 친구와, 지난번 방문에서 알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지인들을 통해 초청 강연 및 토크의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히지양
런던의 첼시 예술 대학에서 초청 강연중인 모습.
히지양
런던 대학교 ‘SOAS Korean Social and Environmental Justice Society’ 와 토크 후에 찍은 사진.
런던 대학교 SOAS에서 퀴어 아시아 학회 멤버들이 마련해 준 토크와 공연 기회.

한국에서는 서울 드랙 퍼레이드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만큼 이제 드랙은 제 삶의 큰 부분이 되었지만, 드랙이 아닌 분야의 예술 활동 또한 병행하고, 또 성소수자 인권 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저에게 드랙 이외의 것들 또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물론 결코 첼시 예술 대학이나 런던 대학교의 교수님들과 학자 분들 만큼 깊이 있는 학술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예술가로서, 그리고 한국에서 다양한 퀴어의 삶과 인권활동의 움직임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제가 이러한 자리에 섰을 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역할을 수행할 때, 그 자리에 계신 누군가에게 어떤 어마어마한 영감을 준다면야 물론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적어도 정보 전달의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는 마음가짐으로 강연과 토크들을 준비했습니다. 제게 이러한 자리들을 마련해 준 분들,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께서 배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고 나누어 주셔서 이전 여행과는 다소 색달랐던 이번 여행도 너무 즐거웠습니다.

퀴어 아시아를 통해 캠든 타운에서 공연 기회를 가진 후 로컬 드랙 아티스트들과 찍은 사진.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공연장인 Royal Vauxhall Tavern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공연장인 Royal Vauxhall Tavern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퀴어 공연 장소인 로열 복스홀 타번(Royal Vauxhall Tavern)에 공연 관람을 위해 찾았던 저는 마침 그 날 공연을 주최하고 있던 라이샌더라는 트랜스젠더 드랙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는 백인들과 로컬들에게 치중된 공연 기회를 다른 배경과 다른 삶의 시각을 가진 아티스트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제게 공연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약속 지켰습니다. 그렇게 저는 150여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지닌 공연장에서 공연할 기회를 정말 우연히도, 감사하게도 얻게 되었습니다. 제 두 번째 런던 여행은 첫 번째 여행만큼이나 즐거웠으며, 첫 번째 여행에서보다 한층 더 깊이 있는 경험들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귀국 직전, 친구의 기숙사 건물에서 웅장한 런던의 경치를 등지고 서있는 제 모습입니다.

2018년 7월

저는 봄에 서울로 돌아왔지만, 저를 처음 런던으로 초대해 주었던 퀴어 아시아 학회는 그 해 여름에도 열렸습니다. 저는 서울 퀴어퍼레이드 등의 일정이 있어 이번에는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제 작품들이 런던에서 전시되게 되었습니다. 사진과 인터뷰를 통하여 게이 남성들의 속옷을 매개체로 삼아 그들의 삶을 엿본다는 취지에서 진행 된 포토그래피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이 전시되었습니다. 저는 국내에 남아 저의 작품과 드랙을 이용해서 퍼포먼스 겸 시위를 여러 차례 펼치며 그 해 여름을 보냈습니다.

Queer Asia
런던 대학교 SOAS에서 열린 2018년 퀴어 아시아 학회에 전시된 사진 작품들
2018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2017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2018 여름 시청 광장에서

얼마 전 제 20회를 맞이한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끝난 후부터 저는 다시 런던 행을 준비하느라 온 정신을 쏟고 있습니다. 올해 7월에 다시 열리는 퀴어 아시아 학회에서 이번에는 대영박물관과 협업을 하여 퀴어 예술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여 작가 모집 기간에 저도 작품들을 제출했고, 최종 선정이 되어 런던 대학교에서 작품 전시를, 그리고 대영박물관에서 <히지양, 허리케인 김치를 만나다(원제: Heezy Yang Meets Hurricane Kimchi)>라는 주제로 퀴어 아티스트로서의 저의 작품 활동과 드랙 활동을 아우르는 토크를 하게 되었습니다.

런던에 처음 갔을 때 찍었던 대영박물관 사진 (외부)
런던에 처음 갔을 때 찍었던 대영박물관 사진 (내부)
히지양
올해 7월 런던에서 전시 예정인 작품 ‘꽃이 피고 그렇게 사랑도 피었다’
히지양
올해 7월 런던에서 전시 예정인 작품 ‘How Is This Okay? And This Is Not?’

런던에 살고 있는 친한 예술가 친구인 로렌스는 저의 방문 소식을 듣고 뉴 크로스(New Cross)에 위치한 ‘테이크 커리지 갤러리(Take Courage Gallery)’에서 저를 위해 또 다른 전시회를 기획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렌스와 그의 친구들 덕분에 다시금 로열 복스홀 터번에서도 드랙쇼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시와 공연 준비에 바쁘고, 런던에 가면 그것들을 실행하느라 바쁘겠지만 이는 정말이지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공개적으로 게이로 살아가면서 작품 및 드랙 활동을 해 온지도 7년 째, 나름 열심히 살아 오면서 가장 잘 한 것이 있다면,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하나 하나의 만남과 기회를 소중히 여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국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달. 저에게 도움을 주고 기회를 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런던 행을 열심히 준비하려고 합니다.

대영박물관과 런던 대학교 SOAS에서 열릴 퀴어 아시아 예술 전시회.
히지양
뉴 크로스의 ‘테이크 커리지 갤러리’에서 열릴 단독 전시회.

혹시라도 올 여름 저의 런던 활동 스케쥴이 궁금하신 분들, 런던에 계실 분들께서는 아래 일정을 참고해 주시면 됩니다. (보러 와주세요!)

7월 13일 오전: 퀴어 아시아 예술 전시회 토크 (대영박물관)

7월 13일 저녁: 단독 전시회 오프닝 공연 (뉴 크로스의 테이크 커리지 갤러리)

7월 14일: 단독 전시회(뉴 크로스의 테이크 커리지 갤러리)

7월 16일: 드랙쇼 (로열 복스홀 타번)

7월 17일: 퀴어 아시아 예술 전시회 클로징 리셉션 (런던 대학교 SOAS)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제 웹사이트를 통해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지난달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핑크닷 서울에서 찍은 사진.(인스타그램 @if_you_mind_)

저의 퀴어 예술 활동 및 드랙 활동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제 소셜 미디어를 참고해 주시면 됩니다.

히지양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heezyyang
히지양 페이스북: www.facebook.com/heezyyang
허리케인 김치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hurricanekim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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