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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27일 18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7월 18일 17시 40분 KST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 커뮤니티 디자이너 J의 인생 여정

행복 인터뷰

J는 커뮤니티 디자이너다. 사진은 J의 아버지가 그린 J의 어머니(왼쪽)와 자화상(오른쪽)이다. 핀란드의 우중충한 감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은근히 끌린다.

J는 누구인가? J는 다양한 직업을 섭렵한 호기심 많은 우리의 다정한 이웃이다. 현재 핀란드 혁신기금, 씨뜨라 (Sitra: 핀란드어식 발음으로 옮김)에서 중간 휴식을 의미하는 에라따우꼬(Erätauko: Intermission in English)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에라따우꼬 프로젝트는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사회의 대중적 담론을 보다 건설적이고 덜 공격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에라따우꼬는 대화를 유도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개개인을 위한 툴박스를 만들었다. 그 툴박스는 곧 스웨덴어와 영어로 번역될 것이다. 또한 시, 규모가 있는 비정부기구, 핀란드 국립 교육기관 (Opetushallitus: Finnish National Agency for Education), 총리실, Kone 재단, 일부 언론 등 다양한 단체들에게 툴박스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교육하고 있다. 그는 에라따우꼬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으며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커뮤니티 디자이너로 이끌어준 다양한 직업들:

직업에서 찾는 행복

 

J : 나의 직업적 방랑은 목수 직업 교육부터 시작된다. 마지막에 받게 되는 이수증 외에는 얻을 것이 없던 목수 직업 교육은 중간에 그만뒀다. 당시 목수로서의 기술이 충분했고 목수로 일하기도 했다. 재단사로 몇 년간 옷을 만들었고, 90년대 후지쯔 서비스에서 국회를 위한 커뮤니케이터의 백업 시스템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전화 교환원도 해봤고, 2달간 호텔 청소원으로도 일했다. DJ는 물론, 오랜 기간 동안 작가가 되려고 애쓰며 돈을 벌기 위해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핀란드 심장협회의 웹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고, 전화 판매 관리자도 해봤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면 나는 불안정하게 여러 직업들을 전전했지만 행복하다. 여러 곳에서 비정규직으로 1년, 2년, 짧은 기간 동안 일해왔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일했던 대부분의 곳에서 정규직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호기심이 많아서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고 선택의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선택의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나이를 먹고 있기에 언제까지 지금처럼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내가 다수의 선택 가능성을 가지게 된 데에는 아르또바(Artova)에서의 경험이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아르또바는 아라비안란따, 또우꼴라, 반하까우뿐끼 (Arabianranta, Toukola, Vanhakaupunki) 지역의 문화, 지역 공동체 형성을 돕는 기관이다. 나는 그곳에서 사회에 대한 호기심과 참여하는 자세,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것을 배웠다. 또한 분석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도 했으며, 프로젝트의 적용 범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미래나 나의 경력을 계획해 본 적이 없다. 운 좋게도 관심이 가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늘 새로운 도전을 즐겼다.

지금의 직장인 씨뜨라는 데모스 헬싱키라는 회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연결되었다. 데모스 헬싱키는 도시계획 관련하여 참여적인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기에 매우 관심이 갔다. 때마침 내가 이사로 있던 지역공동체들을 위한 협회, 헬까 (Helka: Helsingin kaupunginosayhdistykset ry)이사회에 사외 이사 자리가 비어서 데모스 헬싱키 사장을 그 자리에 영입하였다. 헬까 이사회 활동을 통해 데모스 헬싱키를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들과 같이 일하는 씨뜨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씨뜨라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관리자를 찾았을 때 오랜만에 일자리에 지원하였고 선택되었다. 다른 두 일자리 제안도 동시에 들어왔었는데 직업을 고를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나는 운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직업과 달리 나는 글쓰기를 20년간 지속했다. 3개의 소설을 썼고 하나도 출판하지 못했다. 나는 실패한 산문 작가이자 방송대본 작가다. 2015년에 글쓰기를 완전히 멈췄다. 언어와 문장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글을 써왔는데 흥미를 잃었다. 아마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쓰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르또바에서의 경험이나 씨뜨라 이전에 일한 에이우 (EJY: Espoon Järjestöjen Yhteisö)에서 개발 이사로 비정부기관과 교회들, 약 220개의 기관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에스포시와 협력해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변화를 이끌도록 도운 경험이 사회를 새로 디자인하는 일이어서 나의 글쓰기를 대체한 것 같다. 커뮤니티가 어떻게 변하고 진화할지 고민하고 그 방향에 대해 시나리오를 쓰는 커뮤니티 디자이너가 현재 나의 일이다. (커뮤니티 디자이너는 TJi의 해석입니다.)

핀란드 사회가 과거보다 유연해지긴 했지만, 흥미로운 삶을 위해 계속적으로 직업을 바꾼 나는 꽤 독특한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을 자주 옮기더라도 정규직을 원한다. 심지어 나의 부모님조차도 나의 자유로운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많은 교육 프로그램과 직업을 거쳤다. 흥미를 잃으면 그만두었고 내가 다음에 무엇을 선택할지 몰랐다. 그 순간 자유와 삶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최대한 누릴 수 있어서 엄청나게 흥분되었다. 내가 예전에 잠깐 머물렀던 인도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굉장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 복지사회의 혜택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20년간 글쓰기를 했던 J의 책장

 

핀란드가 행복한 나라인 이유?

J : 2018년 세계행복보고서 결과가 아주 새로운 소식은 아니었다. 비슷한 많은 조사 결과들에서 핀란드가 항상 상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핀란드의 복지제도와 평등사상, 솔직함, 부정부패가 없는 현실이 그 결과를 이끌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속여서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를 믿을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핀란드를 안정적이고 안전한 나라로 만들었다. 특히, 행복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는 복지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전 파트너가 인도 델리의 디자인 학교에서 국가 교환 학생으로 8개월 정도 공부했다. 나도 따라갔다. 델리에서는 돈이 없고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사람은 죽을 수 있다. 핀란드는 집이나 먹을 음식이 없다고 누군가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복지는 삶을 매우 안전하게 만들어준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복지에 기댈 수 있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인도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다 중요하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에 따른 계급이 존재했다. 복지국가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 노동자 부모를 둔 아이가 의사가 될 수도 있다.

핀란드 사회는 사람들이 더 만족하고 나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건강과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애쓴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사회가 알아서 잘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고 따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나와 같이 애정을 가지고 좋은 변화를 앞당기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사회에 대한 믿음이 가장 떨어지는 분야는 연금이다. 우리 세대가 은퇴했을 때 과연 충분한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연금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다. 삶이 흐르는 대로 살아왔기에 수입이 들쑥날쑥했고 대체로 적었다. 그래서 충분한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어서 어차피 평생 일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왔기에 내 미래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여긴 인도가 아니니까 음식이 없다고 죽지 않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핀란드는 모든 사람들이 좋은 삶을 유지하고 기본 소득을 가질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법 조항이 있다. 법에서 평등한 복지의 필요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기본 복지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고소할 수도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이 법이 바뀌어야 하지 않느냐는 논의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표정한 사람들, 빠르게 변하는 핀란드:

행복과 거리가 먼 표정과 차이에 대한 과민반응

J : 오슬로를 방문했을 때 사람들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서로 인사를 하고 어쩌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게 되면 사과를 하거나 옷이 멋지다는 등의 긍정적인 말을 건넸다. 반면에 핀란드 사람들은 이런 사교적인 태도에 익숙하지 않다. 나는 슈퍼마켓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면 그 줄에 있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싶다. 그러나 내가 말을 걸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 듯하다.

핀란드가 도시화가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전까지는 모두들 시골에 살았다. 도시는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를 하거나 서로를 알아가야 하는 상황을 많이 제공한다. 시골은 서로가 서로를 알지만 드문드문 떨어져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기회가 적다. 결과적으로 상당한 핀란드 사람들은 타인에게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무표정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서로 믿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걸 굳이 표현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싫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미소 짓고 싶다. 내가 20대 때 그렇게 행동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들의 반응이 싫어 나의 태도를 바꿨다.

사실 나의 많은 친구들이 오래전에 핀란드를 떠났다. 그들 대부분은 핀란드 중부지방에 살았었고 게이였다. 게이라는 이유로 폭력에 노출되었고 이 사회에 속한다고 느끼지 못했으며, 사람들은 그들을 냉대했다. 다른 유럽과 비교해 핀란드는 동성애에 대해 꽤 보수적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87년까지는 범죄로, 93년까지는 질병으로 여겨졌다. 95년 즈음부터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 핀란드 사회는 동성 결혼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도 오래 전에 핀란드 중부 지방인 요엔수우와 싸본린나에 살았었다. 나는 그곳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외부인이었다. 나는 특이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 그때 당시 핀란드는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간간이 차별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차별은 사람들이 다름을 접했을 때 가지는 두려움이다. 다름에 대한 두려움을 잘못 표현한 것이 차별적인 태도이다. 30여 년 전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중부지방에서는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핀란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곳이 지금 어떤 사회로 변화하였을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은 왜 행복할까? 좋은 아빠인가?

J :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긴 하지만 부모와 상당히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그들의 의견을 묻는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바란다. 아이이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신성시한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아이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사람들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아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 한다.

나는 좋은 아빠지만 완벽한 아빠는 아니다. 완벽한 아빠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불편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좋은 아빠다. 내 아이들의 행복을 생각하고 좋은 삶을 살도록 애쓴다. 아이들도 그런 나를 좋아한다. 과거에는 나의 할아버지 세대 때는 아빠와 아이들의 관계가 서먹했다. 할아버지는 가족의 경제를 책임졌고 할머니가 모든 가정사를 주관했다. 할아버지와 그의 아이들과의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복지, 여성권리, 아동권리,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중요하다는 생각들이 모여 핀란드 사회를 변하게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특히 1960년대와 70년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빠의 역할 모델은 유치원 선생님이셨던 나의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우리 가족은 평등했다. 집안일에 대한 성역할이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나의 아빠는 요리도 하고 그릇도 씻고 청소도 했다. 엄마도 그랬다. 나의 부모는 시대를 앞서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부모세대부터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예가 높아진 이혼율이다.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에 부부의 관계가 본인에게 유익한지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가족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이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접근을 복지사회가 뒷받침해줬다. 한부모 가정일 경우 주거문제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사회가 지원을 해준다.

나의 전 파트너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더 나은 부모가 되었다. 우리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매우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 우리의 큰 아이들은 지금 더 행복한 것 같다. 다만 막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다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많고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우리의 관계는 지난 2년간 최악이었다.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저 하루 나쁜 날이 아니었다. 1년 내내 불편한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막내는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 듯하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러나 큰 아이들은 행복해졌다. 나와 대화를 더 나누게 되었고 자신들의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아이들 엄마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혼은 매우 흔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사회가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1주일 단위로 엄마와 아빠의 집에서 번갈아 가며 지내는데 우리의 경우는 서로가 멀지 않은 곳에 살기 때문에 까다롭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우리는 언제 누구와 보내는지 엄격하게 구분을 하지 않는다. 방과 후 아이들은 학교와 조금 더 가까운 내 집에 와서 간식을 먹거나 친구들을 초대해 자신들의 아지트로 활용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이 두 채인 것이다. 어디에 있을지를 본인들이 정하기도 하면서 더 많은 자율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동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할 때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같이 결정하도록 한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런 문화를 가졌다.

 

 

사회 변화를 위한 연구와 노력의 결실

J : 아르또바의 해당 지역은 좋은 실험실이다. 2008년부터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 지역 사람들은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친절하다. 자신들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이 지역에는 주삿바늘을 바꿀 수 있는 곳, 장애인들을 위한 주거공간, 감옥에서 석방된 사람들을 위한 주거공간도 있다. 주민들은 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나도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 주삿바늘 바꾸는 장소는 찾을 수 있었지만, 이 지역 주삿바늘 바꾸는 장소와 감옥에서 석방된 사람들을 위한 주거공간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지역의 주민들은 마약중독자들에 대한 우려로 주삿바늘 바꾸는 장소에 대해 반발이 심해서 이주를 요구한다. 이 지역은 그런 논의가 없다. 심지어 헬싱키의 일부 지역은 장애인 주거지역 유치를 저지하기 위해 싸우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핀란드는 차별이 심하다 할 수 있다.

아라비안란따 지역의 땅 대부분이 시 소유인데 헬싱키의 많은 지역이 그렇다. 시가 각각의 지역에 어떤 건물을 지을지 어떤 식으로 그 건물을 소유하게 할지를 규제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게다가 복지 차원의 주거공간도 자유롭게 구상할 수 있다. 시는 건설회사가 시 소유의 땅에 아파트를 건축할 때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를 포함하도록 유도하여 다양한 사회계층이 섞여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러한 도시계획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계획이 제대로 적용된 첫 모델은 1985년 즈음 생성된 다양한 계층이 모여사는 삐꾸 후오빠라흐띠 (Pikku Huopalahti)가 시초다. 이전에는 교외에 많은 임대아파트를 지었는데 많은 사회문제가 나타났다. 그래서 70년대에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도록 하는 도시계획 운동이 일어났다. 가장 좋은 예인 아라비안란따는 임대아파트, 학생아파트, 다발성 경화 환자들을 위한 아파트, 반소유 아파트, 개인이 소유한 아파트 등이 섞여 있다. 아라비안란따는 완벽하게 도시계획이 되었고 확실하게 그 계획이 실행된 지역이다. 도시계획도 행복에 기여한다.

 

행복의 조건과 기본 소득

J :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내가 사는 지역의 공동체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본 소득이 있어서 굶주림이 없고 추위를 견디는 일이 없어야 한다. 사실 기본 소득은 씨뜨라가 디자인했고 원래 실업자만이 아닌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계획이었다. 씨뜨라 사람들은 기본 소득 실험이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 소득에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더 줘야 하기 때문에 핀란드는 충분한 재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사실상 기본 소득을 실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아라비안란따는 아주 특이한 개방적인 지역이다. 헬싱키에서도 가장 발달된 사회성을 가진 지역이다. 나는 그 사실에 아주 만족한다. 헬싱키의 다른 몇몇 지역도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확대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어떤지 모르겠다. 10년 전, 나는 내가 씨뜨라에서 일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다. 흥미로운 삶을 원해서 다양한 직업을 거친 경험과 공동체에 대한 열정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리고 지금 흥미로운 일들을 한다. 나는 현재를 산다.

 

인터뷰를 마치며...

J와의 인터뷰는 그가 지금 하고 있고 최근 10여 년간 해온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일과 그곳까지 이끈 그의 인생 여정을 듣느라 장장 1시간 40분의 긴 시간을 소비했다. 과거 남들과 달라 차별을 받았던 자신과 친구들의 경험은 그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 듯 하지만, 그가 공동체와 공동체의 긍정적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한 영감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가 말한 핀란드의 부정적 요소들을 생략할까 살짝 고민하기도 했지만, 핀란드가 이상향이 아닌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사회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의 표현을 그대로 남겼다.

최근 아이들의 엄마와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아빠와 아이들의 행복 이야기에 있어서 매우 조심스러웠는데, 담백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매우 고마웠다. 엄마가 아닌 나로 직업에 있어서 다시 일어서기를 하고 있는 내게 그의 직업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부럽기도 했다. 끝으로 나에게는 암호와 같았던 J의 핑글리쉬와 핀란드어를 해독해준 M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 북유럽연구소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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