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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28일 22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28일 22시 36분 KST

상업적 성공의 욕망이 ‘이야기꾼의 욕망’을 앞섰을 때

'아스달 연대기'의 광경은 초현실적이다

최근 tvN 주말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돌아가는 광경은 초현실적이다. 작품이 판타지적인 세계를 잘 그려내서 초현실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청률 순위로만 따지면 동시간대 1위를 놓친 적이 없지만, 그 높은 시청률과 540억원이라는 제작비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졸작의 향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학자의 자문을 구해가며 만들었다는 뇌안탈족의 언어는 알고 보니 현대 한국어 어휘를 자음과 모음 단위로 파자해 순서만 뒤집어 읽은 어구전철(語句轉綴)에 불과했고, 야심차게 공개한 홍보 이미지들부터 극중 등장하는 대흑벽 따위의 설정들은 미국 에이치비오(HBO)를 먹여 살린 대작 <왕좌의 게임>에서 따온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빼곡하게 집어넣은 설정들은 영상문법으로 채 녹아들지 못한 채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내레이션을 통해 화급하게 설명되었는데, 그조차도 시청자들을 이해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설상가상 컴퓨터그래픽 회사에 살인적인 스케줄로 일감을 맡긴 결과 눈을 의심할 만큼 조악한 화면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극중 타곤(장동건)이 올림사니(극중 세계관 속에 등장하는 일종의 위령제로, 특정 부족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음)를 하는 장면에서 반딧불이들이 타곤을 둘러싸는 장면은, 온라인상에서 ‘니 팔자야’(노라조가 2015년에 발표한 곡. 뮤직비디오가 온통 컬트의 수준에 도달한 종교예식을 패러디한 영상으로 가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단 네 글자만으로 조롱의 대상이 됐다.

‘디워’ 사태의 재방송?

그저 언어 설정이나 컴퓨터그래픽 어느 한 부문의 실패였다면 이렇게까지 총체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아스달 연대기>를 향한 세간의 조롱은, 이 작품 뒤에 도사린 욕망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아스달 연대기>는 뚜껑도 열기 전부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처럼 홍보됐다. 촬영장 세트를 보존해 테마파크로 활용하고, 각종 상품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브랜드 사업을 전개하며, 사전에 시즌제 제작을 확정해 체계적인 제작 방식을 구축하며, 전세계에 방영권을 수출해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아, 이를 통해 씨제이이엔엠(CJ ENM) 산하의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이 명실상부 글로벌한 제작 스튜디오로 도약할 것이라는 청사진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이 청사진의 원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왕좌의 게임>이었다. 욕망은 창대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결과가 초라한 상황, 스튜디오 드래곤의 주가가 급락하고 작품이 오만 곳에서 다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론 이런 상업적인 욕망이 꼭 완성도 낮은 작품을 낳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외 거대 자본이 만든 프랜차이즈 영화들도 대부분 사전에 제작비를 회수할 만한 다양한 부대사업을 미리 준비하는데, 그중에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전세계 대중문화사의 시금석이 된 작품들도 있으니까. 이야기꾼이라면 누구나 멋지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니,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할 만한 수익원에 대해 미리 고민해 위험 부담을 줄이는 일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 욕망이 ‘멋지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꾼의 욕망’보다 먼저 올 때 벌어진다. 더 큰 시장에 진출해 성공하겠다는 욕망, 거대 규모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사업적으로 성공하겠다는 욕망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꾼의 욕망을 압도하는 순간, 작품은 밸런스를 잃고 붕괴한다.

조악한 완성도를 비판하는 이들 앞에서, 연출자는 자신의 전작인 tvN <미생> 속 흙수저 인턴사원 장그래의 대사를 빌려 앓는 소리를 한다.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아프니까.” 백상예술대상과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대통령 표창 수상에 빛나는 경력 20년의 프로듀서가, 학벌도 재산도 수상경력도 이력도 하나 없는 가난한 청년 장그래의 대사를 빌려 저 자신을 긍휼히 여기는 이 초현실적인 광경.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나는 <아스달 연대기>를 둘러싼 이 모든 현상이 꼭 영화 <디워> 때의 재방송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압도적인 제작비가 투여되고, 작품이 공개되기도 전에 이 작품으로 벌어들일 천문학적인 수익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시장을 맴돌고, 테마파크와 캐릭터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먼저 언론에 공개되고, ‘동양의 이무기 전설이 세계적인 블록버스터가 된다’랄지 ‘고조선을 모티프로 한 판타지로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처럼 한국의 전통문화가 전세계인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국뽕’에 기댄 마케팅 전략이 집행되고, 작품의 조악한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연출자가 앓는 소리를 한다. <디워>를 비롯한 심형래 감독의 작품들이 그랬듯, <아스달 연대기> 또한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욕망보다 “우리도 미국처럼 저런 거 만들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라는 욕망이 앞서서 오늘날에 이른 게 아닐까? <디워>가 따라 하고 싶었던 콘텐츠가 <쥬라기 공원>이나 <고질라> 같은 할리우드산 괴수물이었다면, <아스달 연대기>가 따라 하고 싶었던 콘텐츠가 <왕좌의 게임>이었으리라는 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품이 망가지는 길은 확실

비슷한 현상은 타사의 프로그램들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엠비시(MBC)가 야심차게 선보였으나 제작이 중단된 이후에야 비로소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힙합 경연 프로그램 <타겟: 빌보드?킬빌>(이하 <킬빌>)을 보자. 이 프로그램은 한국 힙합 차트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스타들을 모아 놓고 경연을 시킨 뒤, 이 중 최종 우승을 거둔 가수를 미국으로 데려가 유명 프로듀서 디제이 칼리드(DJ Khaled)와 함께 음원을 만들어 미국 현지에서 발매해 빌보드 차트에 진입 시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 현지의 반응은, 이게 대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투였다. 프로그램이 제작 준비를 하고 있던 2018년 9월13일치 <스포츠동아>의 단독 보도 ‘미 빌보드 킬빌 론칭에 난색 “차트 입성 콘셉트 이해 안 가”’를 보면, 빌보드 코리아와 미국 빌보드 본사 모두 “오로지 빌보드 차트 입성만을 목표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콘셉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한국의 아티스트가 미국에서 사랑받으려면 단순히 곡만 좋다고 될 일은 아니고, 홍보와 마케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빌보드 차트 진입은 곡이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은 결과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된다는 발상부터가 뒤틀린 목표였다. ‘현지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겠다’는 콤플렉스가 과한 나머지, 시작부터 본말이 전도된 채 출발한 셈이다. 목표가 잘못됐으니 방법이라고 제대로 됐을 리가 없다. <킬빌>은 ‘빌보드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현지의 유명 프로듀서인 디제이 칼리드를 섭외했는데, 설령 컬래버레이션에 성공해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다 해도, 그것을 디제이 칼리드의 힘이 아닌 한국 아티스트들의 재능과 콘텐츠가 지닌 힘이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엎친 데 덮쳤다고, <킬빌>은 디제이 칼리드를 섭외하는 데 난항을 겪으며 4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기약 없는 제작 중단 상태에 놓여 있다.

워낙 많은 콘텐츠가 동시다발적으로 발표되는 시대다 보니, 갈수록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확답을 하는 일은 어려워진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작품이 망가지는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작품의 내적 완성도를 갖추려는 욕망보다 상업적 성과를 거두고 인정받겠다는 욕망이 더 앞서서 전자를 압도하는 순간, 작품은 반드시 망가지게 되어 있다. 그 간단한 진리를 배우기 위한 수업료로 540억원과 60억원(각각 <아스달 연대기>와 <킬빌>의 제작비 추정치)이 필요했다니, 그저 탄식이 나올 뿐이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