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2019년 08월 01일 22시 06분 KST

불법촬영·성매매·성폭행·성추행 : 요새 TV프로그램 제작진들의 고민

"개인 신상정보를 불법 조회할 수도 없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할 수도 없고..." - 케이블 예능 PD

뉴스1
배우 강지환 

“얼굴이 나왔을 때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은 없나요?”

“없습니다.”

“혹시 우리가 더 알고 있어야 될 건요?”

“없습니다.”

의뢰인과 변호사의 대화가 아니다. 예능프로그램 제작에 앞서 제작진과 출연자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올해 들어 출연자들이 학교폭력(학폭), 성폭력 등의 문제에 휩싸이며 방송에서 중도하차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자, 섭외 과정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 됐다.

연예인이든 비연예인이든 과거 행적이나 범죄적 행태로 파문을 일으키는 사건이 잦아지면서 예능프로 제작진이 출연자 검증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겨레>가 집계해보니 올해 1월부터 각종 사건에 연루돼 하차하거나 이전 출연 회차가 삭제된 티브이(지상파·종합편성채널·케이블 포함) 출연자가 16명에 이른다. 연예인 10명, 비연예인 6명인데 사안의 심각성도 더해졌다.

과거엔 음주운전과 도박 정도였다면 올해는 불법촬영 및 유포(정준영), 성매매(승리 등), 성폭행(강지환 등) 혐의가 등장했으며, <하트 시그널>로 이름을 널리 알린 배우 강성욱은 2017년 프로그램 방영 중에 성폭행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프로듀스 엑스(X) 101>에 출연했던 윤서빈은 학폭 논란이 제기돼 하차했다. 문제는 그 피해를 다른 출연자와 제작진까지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점이다.

정준영이 출연했던 <해피선데이―1박2일>은 결국 폐지됐고, 강지환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면서 그가 출연 중이던 드라마 <조선생존기>는 주연배우를 바꿔 나머지 분량을 찍어야 했다. <하트 시그널>은 시즌1의 브이오디(VOD) 서비스를 통째로 지우면서 다른 출연자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고, 돈을 빌려가고도 상식 밖의 행동을 한 매니저 때문에 그와 <전지적 참견 시점>에 짝으로 출연한 개그맨 이승윤도 동반하차했다.

제작진은 이런 ‘인성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나름대로 안간힘을 쓴다. 어느 정도 평판 조회가 가능한 연예인과 달리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비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는 특히 더 그렇다. 지상파 예능프로 ㄱ 작가는 “사전 인터뷰 횟수를 더 늘려가면서 꼼꼼히 알아본다. 당사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친구로 보이는 이들의 계정도 살펴본다”고 했다. 케이블 예능프로 ㄴ 피디는 “여러명이 번갈아 인터뷰하면서 질문에 답이 바뀌거나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면 아예 출연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당사자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다. 성추행 가해자였던 사실이 드러나 해당 회차가 삭제된 <나는 자연인이다> 출연자는 제작진이 여러차례 인터뷰를 했지만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케이블 예능 ㄷ 피디는 “그렇다고 개인 신상정보를 불법 조회할 수도 없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신문하듯 물어볼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뉴스1
가수 승리 

제작진은 “현재로선 사후 대처를 충실히, 발 빠르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으지만, 섭외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항목을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확인하는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부분 방송사는 비연예인 출연 시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지는 않는다. 씨제이이엔엠 등 계약서를 작성하는 곳도 이런 문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항목은 없다.

요즘 부쩍 ‘인성 논란’이 빈번해진 데는 관찰예능이 늘어난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일상을 관찰한다면서 좋고 친근한 면을 부각해 이미지 포장에 힘쓰지만 이 때문에 과거 출연자들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이 더 분노해 폭로하는 경우도 많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인터넷이 활발한 시대에 더이상 이미지는 완벽하게 관리될 수 없고 만들어질 수 없다. 방송에서 주목받는 이들 모두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됐다”며 “제작진이 계약서를 상세하게 써서 예방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