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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1일 13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11월 05일 15시 56분 KST

20대 최애지만 작품이 비싸 한국에 못 오는 작가

마크 로스코, 데이비드 호크니의 뒤를 잇는다

한 번도 전시회를 연 적은 없으나 한국인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작가가 있다. 열리기만 하면, 2015년 예술의 전당 ‘마크 로스코 展‘, 올해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 展’의 뒤를 잇는 전시회가 될 것이 자명한데, 비용 때문에 그 누구도 기획하지 못하고 있단다. 바로 현대 미국 회화를 대표하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다. 그림은 유명하지만, 그동안은 잘 알지 못했던 에드워드 호퍼와 관련된 이야기 10가지를 준비해봤다.

Lusha Nelson via Getty Images
Artist, Edward Hopper, wearing a three-piece tweed suit, and polka dot tie, sitting in an arm chair in partial shadow, and looking down with a somber expression. (Photo by Lusha Nelson/Condé Nast via Getty Images)
John Loengard via Getty Images
Portrait of painter Edward Hopper sitting on stool in his studio. (Photo by John Loengard/The LIFE Picture Collection via Getty Images)
  • # 1. <밤샘하는 사람들>은 역사상 복제가 가장 많이 됐다
    # 1. <밤샘하는 사람들>은 역사상 복제가 가장 많이 됐다
    Fine Art via Getty Images Edward Hopper(미국, 1882-1967),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84.1 x 152.4 cm (33 1/8 x 60 in.), Art Institute of Chicago (Photo by VCG Wilson/Corbis via Getty Images)
    어둠 속에서 한 가게만이 불을 밝히고 있다. 덕분에 통유리창으로 된 가게 안이 훤히 보인다. 한 남자의 웅크린 등, 맞은편에 앉은 무표정한 남녀와 식당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 식당 주인은 맞은편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다. 서로의 시선이 엇갈리고 오히려 침묵이 편안한 도심의 밤은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짙은 고독감이 느껴지는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1942>은 역사상 복제가 가장 많이 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 #2. 그림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발발한 지 50일 만에 탄생했다
    #2. 그림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발발한 지 50일 만에 탄생했다
    George Rinhart via Getty Images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1942>은 전시되자마자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는데, 시대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 그림은 1942년 그려졌다. 정확히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발발한 지 한 달하고 보름 후였다. 그림 속에는 미국 사회를 지배했던 전쟁의 공허함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배경이 된 곳은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었던 한 식당이었다. 당시 그리니치 빌리지는 앤디 워홀,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살던 미국의 자유 운동의 중심지였다. 새로운 것이 태동하고 변화가 움트는 곳이었지만, 밤이 되면 그곳 또한 적막하기 그지없는 고독한 곳이었음이 그림을 통해 드러난다.
  • #3. 버락 오바마 집무실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3. 버락 오바마 집무실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다. 작품은 위에서부터 '콥의 헛간(Cobb's Barns, South Truro), 1930-1933' , '벌리 콥의 집(Burly Cobb’s House, South Truro), 1930-1933' (Chuck Kennedy/The White House)
    2014년 2월 7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두 점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걸렸다. 대통령과 가족들에겐 백악관을 꾸밀 작품의 선택권이 주어지는데,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원했다. 호퍼 작품의 최대 소장관인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은 고심 끝에 <콥의 헛간(Cobb's Barns, South Truro),1930-1933>과 <벌리 콥의 집(Burly Cobb’s House), 1930-1933>을 대여한다. 사우스 트루로(South Truro)라는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그려진 두 작품은 강한 햇빛과 깊은 그림자, 널따란 하늘, 초록빛 평원 위 단조로운 집 등을 담아내 미국적인 풍경을 그려냈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가장 미국적인 풍경은, 미국을 상징하는 장소에서 오바마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 함께 했다.
  • #4. 호퍼는 프랑스인마저 매혹시킨 미국 작가다
    #4. 호퍼는 프랑스인마저 매혹시킨 미국 작가다
    호퍼의 회고전이 열렸던 2012년 10월 8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한 여성이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밤샘하는 사람들(Nightwakd), 1942'을 보고 있다. (AP Photo/Francois Mori)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이자 사실주의의 대표주자로 평생 뉴욕에서 살았던 호퍼.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인상파의 후예’라고 지칭하며, 프랑스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몇 해 전 파리 그랑팔레(Grandpalais)에서 열린 호퍼의 전시회는 3개월 만에 80만 명이 방문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밖까지 줄을 설 정도로 사람들은 열광했다. 평소 미국을 예술적으로 뒤떨어진 나라로 치부하는 콧대높은 프랑스인이 인정한, 아주 드문 미국 작가라 할 수 있다.
  • #5. 워싱턴 스퀘어 노스 3번지 꼭대기 층에서 약 50년을 살았다
    #5. 워싱턴 스퀘어 노스 3번지 꼭대기 층에서 약 50년을 살았다
    'Roofs of Washington Square, 1926' (Photo by Francis G. Mayer/Corbis/VCG via Getty Images)
    에드워드 호퍼는 태생부터 뉴요커였다. 1882년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1시간쯤 떨어진 나이 액(Nyack)에서 태어난 호퍼는 3번에 걸친 유럽 여행을 제외하고는 1908년 이래로 줄곧 뉴욕에서 살았다. 작가로는 드물게 생전에 성공한 케이스로 1920년대부터 명성을 얻었던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해튼 빌리지의 워싱턴 스퀘어 노스 3번지 꼭대기 층에서 약 50년을 산다. 1924년 결혼한 그의 부인 조세핀(Josephine N. Hopper)도 함께였다.
  • #6. 처음엔 광고 삽화 작업을 했다
    #6. 처음엔 광고 삽화 작업을 했다
    'Night Shadows,1921' by American artist Edward Hopper, Mr. and Mrs. Julius F. Pratt Fund. (Photo by Indianapolis Museum of Art /Getty Images)
    호퍼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약 7년간 ‘뉴욕상업미술학교’에서 삽화를 배운다. 이후엔 ‘뉴욕 아카데미’에 입성 인상파 화가인 ‘윌리엄 메리트 체이스(William Merritt Chase)’에게서 가르침을 받는다. 졸업 이후에는 삽화와 유화를 했던 이력으로 광고 일러스트레이션과 데생 일을 하게 된다. 순수 미술에 직접적으로 뛰어든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였다. 광고 일을 하면서는 가끔 대학 친구들과 전시회를 열거나 여름 휴가 시즌에 아틀리에에서 유화를 그리는 정도에 그친다.
  • #7. 그림 속 여성은 오로지 부인인 조세핀을 모델로 했다
    #7. 그림 속 여성은 오로지 부인인 조세핀을 모델로 했다
    '여름(Summertime), 1943', oil on canvas, 29.1 x 44 in., Delaware Art Museum, Wilmington, Delaware. (Photo by VCG Wilson/Corbis via Getty Images)
    조세핀은 호퍼와 경쟁관계였다. 조세핀은 동료 화가로 뉴욕 아카데미 시절 호퍼를 만났다. 비록 결혼 후에는 보수적인 호퍼의 제지로 그림을 전혀 그릴 수 없었지만,
    그녀 덕분인지 호퍼는 오히려 결혼 후 예술계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수채화'로 작업하도록 강요했던 것도 참여해야 할 전시회를 결정한 것도 모두 그녀였으며,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기도 했다. 혹자들은 그림 속 조세핀이 마치 타인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은 호퍼의 경쟁심이 드러난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찌 됐건 조세핀은 호퍼의 가장 큰 조력자였으며, 비평가였고, 유일한 모델이었다.
  • #8. “나는 여전히 인상파라고 생각한다.”_에드워드 호퍼
    #8. “나는 여전히 인상파라고 생각한다.”_에드워드 호퍼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 1907'. HuffPost France
    1962년, 80세였던 호퍼 스스로 얘기했던 바다. 그는 일생을 통틀어 3번밖에 없었던 여행 중 ‘파리’에 빠져들고 만다. 1906년, 학교를 졸업하고 떠났던 프랑스 파리에서 모네와 세잔, 반 고흐와 같은 인상파 작품을 직접 보게 되면서부터다. 빛을 가지고 의미를 만들어냈던 회화기법에 매료되었던 그는 ‘빛’이란 주제에 침잠한다. 알다시피 그의 전 생애에 걸쳐 ‘빛’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러한 경향은 파리 여행 이후, 초기 작품에서부터 이미 드러나기 시작한다.
  • #9. 그림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이 많다
    #9. 그림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이 많다
    '서부의 모텔(Western Motel), 1957', Oil on canvas, 30 1/4 x 50 1/8 inches (77.8 x 128.3 cm). Located in the Yale University Art Gallery, New Haven, Connecticut, USA. (Photo by VCG Wilson/Corbis via Getty Images)
    그의 그림은 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 <싸이코>의 감독으로 영화계의 교본으로 남아있는 알프레드 히치콕은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알려져있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선 호퍼 그림 13점을 완벽하게 재현하였으며, <캐롤>에서도 호퍼의 그림을 오마주 한다. 공효진과 공유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SSG 광고 역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참고했다고 한 바 있다.
  • # 10. 호퍼는 자신이 팝아트의 선구자인 것을 무시했다
    # 10. 호퍼는 자신이 팝아트의 선구자인 것을 무시했다
    '자동판매기(Automat),1927' Francis G. Mayer via Getty Images Automat by Edward Hopper (Photo by Francis G. Mayer/Corbis/VCG via Getty Images)
    사실주의의 대표주자였던 호퍼는 추상표현주의의 등장과 함께 뉴욕 미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약 40년간 같은 형식과 주제로 그림을 그려나갔던 호퍼가 급변하는 미국 시장에서는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팝아트가 떠오르면서 신사실주의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평가받으나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상주의의 마지막 후예로서의 자존심이었는지 모르나 실제로 미국 대표 사실주의 화가인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에릭 피슬(Eric Fischl), 알렉스 카츠(Alex Katz) 등 많은 화가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