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9월 06일 19시 22분 KST

악명 높았던 짐바브웨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사망했다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HARARE, ZIMBABWE - (ARCHIVE): A file photo dated July 29, 2018 shows Former President of Zimbabwe Robert Mugabe holds a press conference on Zimbabwean general election in Harare, Zimbabwe. Robert Mugabe has died aged 95 after battling ill health, it has been confirmed. (Photo by Mujahid Safodien/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37년간 철권통치를 이어갔던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갑작스런 군부 쿠데타와 의회 탄핵 절차 이후 사임한지 거의 2년만이다.

에머슨 음난가그와(76) 짐바브웨 대통령은 9월 6일에 트위터를 통해 조의를 표했다.

짐바브웨 건국의 아버지인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의 사망을 발표하게 되어 지극히 슬프다.

로버트 무가베는 해방의 아이콘이었으며, 범아프리카주의자였고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힘을 주는데 일생을 바쳤다. 우리 나라와 대륙의 역사에 대한 그의 공헌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영혼이 영원히 평화롭게 잠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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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photo dated 19/4/1980 of the Prince of Wales receiving an Independence Medal from Robert Mugabe, the Prime Minister of the newly independent Zimbabwe, during a dinner at Government House, Salisbury. Mr Mugabe has died aged 95.

무가베 전 대통령은 1980년에 소수 백인의 통치가 끝난 뒤 권력을 잡고 종신 통치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1987년까지는 총리로, 그후 2017년 11월에 축출되기 전까지는 대통령으로 짐바브웨를 통치했다.

무가베는 죽을 때까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분열을 초래한 인물 중 하나로 남았다. 그는 37년간 집권하며 가난한 흑인 짐바브웨인들, 백인 농부들, LGBTQ에 대한 인권 유린을 조직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자원이 풍부한 짐바브웨가 빈곤에 빠져드는 동안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비판도 인다.

Howard Burditt / Reuters
President Robert Mugabe and new wife Grace leave the Kutama Catholic Church August 17, 1996 after exchaning their wedding vows. The couple were traditionally married shortly after the death of Mugabe's first wife Sally. The ceremony was attended by six thousand invited guests. REUTERS/Howard Burditt

중년까지의 삶

무가베는 1924년 2월 21일에 남로디지아(1923~1965년까지 짐바브웨의 명칭)의 즈빔바에서 태어났다. 영국이 식민지화한지 4개월 뒤의 일이었다. 7개의 학위를 가진 그는 1951년에 첫 학위를 따고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1958년 가나에서 교사로 일하던 무가베는 아내가 될 동료 교사 사라 ‘샐리’ 헤이프론을 만났다. 영국 식민지였던 가나에서 독립의 결실을 목격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로 한다.

무가베는 1960년에 남로디지아로 돌아와 식민지 정부가 흑인 수천 가구를 거주지에서 쫓아냈음을 알게 된다. 그 해에 마르크스주의 이상을 내세우며 독립 운동을 시작한다. 민주당 홍보담당으로 선출된 그는 소수 백인 통치 종식과 흑인의 권리 증진을 추구했다. 인종차별과 분리를 강화하는 법을 철폐하자는 운동 등이었다.

무가베와 헤이프론은 1961년에 결혼했다. 그 해, 영국이 민주당 금지 조치를 내리자 무가베는 게릴라 전쟁을 이끌어 사상자를 냈다. 1963년에는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다른 저항조직 ZANU(Zimbabwe African National Union)를 만들었다. 백인 통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영국은 곧 ZANU를 불법화했다.

무가베는 ‘체제 전복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1964년에 남로디지아에서 체포되어 10년형을 받는다. 1966년에 헤이프론과 낳은 유일한 아이 나모드제니이카가 말라리아로 3세에 사망했을 때도 당국은 장례식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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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mbabwean President Robert Mugabe looks on during his inauguration and swearing-in ceremony on August 22, 2013 at the 60,000-seater sports stadium in Harare. Veteran Zimbabwean President Robert Mugabe was sworn in as Zimbabwe's president for another five-year term before a stadium packed with tens of thousands of jubilant supporters. AFP PHOTO / ALEXANDER JOE / AFP PHOTO / ALEXANDER JOE (Photo credit should read ALEXANDER JOE/AFP/Getty Images)

정치 커리어

무가베는 감옥에서도 게릴라 활동을 조직했다. 1974년에 풀려난 뒤에도 독립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고, 영국은 1979년에 다수 흑인 통치로의 이양을 모니터하겠다고 동의했다.

남로디지아는 1980년에 독립국인 짐바브웨 공화국이 되었다. 무가베가 이끄는 ZANU-PF(Zimbabwe African National Union - Patriotic Front)가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무가베는 총리가 되었다. 무가베와 로드 캐링턴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그 해 노벨 평화상 공동 후보에 올랐다.

1982년에 무가베는 북한에서 훈련받은 제5여단을 마타벨렐란드에 보내 소수 부족인 은데벨레 부족 위주의 반군을 진압한다. ‘구쿠라훈디’라 불린 이 인종 청소에서 2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가톨릭 정의와 평화 위원회(CCJP; Catholic Commission for Justice and Peace)는 밝혔다.

ZANU-PF와 짐바브웨 아프리카인 연합(Zimbabwe African People’s Union)이 1987년에 합당하여 국수주의 정당이 되었을 때야 이 억압은 끝이 났다. 이때 총리직이 없어져 무가베는 대통령이 되었다.

무가베는 그후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며 2017년 11월까지 짐바브웨를 통치했다. 그러나 부정선거 의혹이 반복되었으며, 항의 시위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1980년대 말에 무가베는 비서 그레이스 마루푸를 만나 불륜 관계를 시작한다. 헤이프론은 1992년에 사망했고, 무가베와 마루푸는 1996년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남아공 대통령이던 넬슨 만델라를 포함하여 수천 명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무가베와 마루푸는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다.

부패 논란

무가베 가족, 정부와 이 닿아있는 인물들은 부패했고 광산업 등의 산업에서 수익을 올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2010년에 미국에서 유출된 전보에 의하면 그레이스 무가베는 다이아몬드 채굴에서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는 혐의가 있다.

무가베는 2000년부터 백인이 소유한 상업 농장들을 압수해 대부분을 ZANU-PF 당원들에게 넘겼다는 비난을 국제적으로 받았다.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무가베의 정책에 반발하여 제재를 가하고 재정 지원을 끊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며 짐바브웨의 빈곤 문제는 점점 더 심해졌다. 2016년에는 극심한 가뭄 때문에 무가베는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짐바브웨 시골 지역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5백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었다. 그러나 무가베는 93세 생일 파티를 열었는데, 주최측은 ‘아프리카 최대’라고 자랑했다. 비용은 1백만 달러에 가까웠다고 한다.

법망을 피해간 것 역시 무가베 정권의 특징이었다. 2000년에 무가베는 국영은행도 관여되어 있는 복권에 당첨되어 10만 짐바브웨 달러를 받았다. 2015년 6월에 무가베의 의붓아들이 수도 하라레에서 차로 사람을 치어 살인으로 기소되었는데도 고작 800달러 벌금형만 받고 투옥되지 않아 충격이 일었다.

경제, 정치, 사회 문제가 심해지자 2016년에는 전국에서 반 무가베시위가 일었다. 그러나 무가베는 저항하며, 경제 위기는 국제 제재 때문이며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시위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Philimon Bulawayo / Reuters
Zimbabwe's President Emmerson Mnangagwa arrives for talks with leaders of opposition parties in Harare, Zimbabwe, February 6, 2019, REUTERS/Philimon Bulawayo

군사 쿠데타

2017년 11월 21일, 당시 93세이던 무가베는 사임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군부가 권력을 탈취하고 구류하자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임에 동의했다. 같은 날 ZANU-PF는 무가베를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레이스의 당적을 말소했다.

무가베가 11월에 해고하여 논란이 일었던 음난가그와 당시 부통령이 현재 짐바브웨 3대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다.

음난가그와는 정부의 가장 심각한 권력 남용에 가담한 바 있어, 짐바브웨의 진정한 정치적 변화에 대한 희망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짐바브웨 전역에서는 무가베의 사임을 크게 반겼다.

무가베 사임 소식이 퍼지자 하라레의 거리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했다.

한 남성은 “오늘은 짐바브웨에게 있어 좋은 날이다. 우리 나라의 새로운 시대다.”라고 BBC 뉴스에 말했다. 한 여성은 “짐바브웨의 모든 사람들이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짐바브웨의 새 출발이다.”라고 말했다.

 

* HuffPost US의 Robert Mugabe, Zimbabwe’s First Post-Independence Leader, Dead At 95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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