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2019년 10월 30일 18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10월 30일 18시 34분 KST

가난한 무명작가는 파리의 어느 여배우를 만나서 스타가 됐다

꽃의 여인 시리즈로 유명하다

‘여름을 그리워하다’

그릴 모(慕)에 여름 하(夏)자를 써서 중국에서는 모하라 부른다. 발음에 따라 뮤샤, 뮈샤, 무샤 등으로 바뀌는 그는 체코의 대표 작가, 알폰소 무하(Alphonse Mucha,1860~1939)다. 서정적인 중국 내 이름만큼 그의 그림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키치한 그림 풍 덕에 국내에서는 마니아층이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활동 당시에는 포스터로 시작해 장식 예술까지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무하 스타일(Le Style Mucha)’이란 말이 생길 정도였다. 모방 스타일이 워낙 많은 탓에 작가는 몰라도 그림을 보면 ‘아’하고 알 수 있을 만하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꽃과 여인을 주제로 한 시리즈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데, 그 여인들이 현재 한국에 와 있다.

  • #1. 가난했던 작가를 스타로 만든 여배우
    #1. 가난했던 작가를 스타로 만든 여배우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96 (Photo by Fine Art Images/Heritage Images via Getty Images)
    1887년, 무하는 프랑스 파리에서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후원이 끊겨 학업을 중단한 채 잡지와 광고 삽화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행운은 정말 우연히 다가왔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란 말로 설명될 수밖에 없던 12월 연말의 일이었다. 인쇄소 일을 하는 친구 하나가 연말 휴가를 가기 위해 무하에게 대신 일을 부탁한다. 유명 미술가들이 그린 전단이나 달력, 포스터를 찍어내던 곳에서 교정쇄를 보는 일이었다. 그때 인쇄소로 한 통의 연락이 온다. 당대 유럽 최고의 여배우로 칭송받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1844~1923)' 주연의 연극,  <지스몽다 Gismonda> 포스터를 그려달라는 요청이었다. 모두가 떠난 텅 빈 파리, 작가라고는 오직 인쇄소에 있던 '무하' 한 명이었다.
  • #2. 1월 1일, 무하 시대의 개막
    #2. 1월 1일, 무하 시대의 개막
    '지스몽다', 석판화, 210.8×68.2cm, 1894, ((c)Richard Fuxa Foundation)
    포스터는 새해 첫날 거리에 있어야 했고, 선택지는 무하뿐이었다. 그는 기회를 잡고자 열성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일전에도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렸다가 인쇄업자로부터 퇴짜를 맞은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물론 그들은 그때처럼 완성된 포스터를 본 후 난색을 표했다. '사라 베르나르'가 절대 승낙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인쇄업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베르나르는 무하의 포스터가 마음에 든 나머지 5년짜리 계약서를 내민다. 그것이 무하 시대의 시작이었다. <자스몽다>의 포스터는 거리에 붙자마자 사라지기 일쑤였으며, 웃돈을 받고 판매하는 수준까지 올라간다. 여담이지만 해당 포스터를 두고 인쇄소와 '사라 베르나르'는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 #3. 넝쿨 같은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화려한 장식 '무하 스타일'
    #3. 넝쿨 같은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화려한 장식 '무하 스타일'
    '사계:봄,여름,가을,겨울' 중 '여름' 석판화, 5.,5x101.6cm, 1900 ((c)Richard Fuxa Foundation)
    넝쿨같이 구불거리는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꽃과 과일 등 자연에서 차용한 화려한 장식 등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그의 새로운 화풍은 ‘무하 스타일(Le Style Mucha)’이라 불리며 당대 문화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포스터를 비롯해 광고와 책의 삽화를 그리고 보석과 카펫, 벽지, 장신구까지 제작하게 된다. 세기말 파리에서 그는 다양한 예술적 새로운 유행을 접하게 되었고, 약 18년 동안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작가로 성장하게 된다.
  • #4. 무하의 하루
    #4. 무하의 하루
    '모엣샹동-임페리얼' ((c)Richard Fuxa Foundation)
    당시 '무하 스타일'은 사용되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연극 포스터 외에도 다양한 기업의 홍보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무하의 하루'를 만들 만큼 그 종류가 다양했다. 철도와 자전거, 맥주, 담배, 향수를 비롯해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네슬레(Nestlé)와 모엣샹동(MOËT&CHANDON)도 모두 무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브랜드나 제품명을 제외한 순수 그림으로만 포스터를 재 인쇄할 만큼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포스터라는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보석세공사인 조르주 푸케(Georges Fouquet)의 의뢰를 받아 액세서리 디자인 및 푸케 보석상의 내부 장식 디자인도 하게 된다. 그의 그림으로 채워진 달력과 책, 가구까지. 무하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시기였다.
  • #5. 아르누보의 중심
    #5. 아르누보의 중심
    '모나코 몬테-카를로' 석판화, 73,3 x 107,3, 1897, ((c)Richard Fuxa Foundation)
    무하가 인기를 끌었을 때는 일종의 새로움을 지향하는 예술 운동이 유럽과 미국, 남미에까지 발생한다. 기존의 정통 예술을 거부하고 새로운 양식을 만들고자 하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아르누보(art nouveau)'라 한다. 1890~1910년 사이,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아주 짧게 유행한 양식이었다.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르누보라 하면 덩굴 식물 등 자연을 모티프로 한 유연한 선, 곡선을 활용한 장식 등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의 대표주자가 바로 무하였다. 무하 자체가 아르누보였으며, 상징적인 존재이자 새로운 예술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 #6. 가장 성공했을 때 고국을 그리워하다
    #6. 가장 성공했을 때 고국을 그리워하다
    '아틀리에에서 알폰스 무하'. 1929, (Photo by: Sovfoto/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정작 무하는 가장 성공했을 때 파리를 뒤로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로댕과 함께 체코 여행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슬라브인으로서, 체코의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획적인 경제생활을 하지 못했던 탓에 모아 놓은 돈이 없던 그는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를 결정한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보석과 포스터 등을 인정받았던 그가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체코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그는 미국에서 다시 한번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된다.
  • #7. 제2의 인생을 열어줄 인물이 나타나다
    #7. 제2의 인생을 열어줄 인물이 나타나다
    '1926년 프라하의 제8회 소콜 축제, 슬라브의 형제, 블타바강 위의 축제', ((c)Richard Fuxa Foundation)
    운명의 상대는 찰스 크레인(Charles R. Crane)이라는 부유한 사업가였다. 무하는 우연히 찰스의 딸들을 그리게 되면서 그와 인연을 맺게 된다. 무하가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던 걸까? 찰스 또한 무하와 같은 슬라브인이었으며, 무하의 소원이 민족의 역사를 담은 그림이라는 얘기를 듣고 평생 후원을 약속한다. 그리고 덕분에 무하는 1910년 조국으로 돌아간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 #8. 인정받지 못했으나 국가를 위해 그림을 그리다
    #8. 인정받지 못했으나 국가를 위해 그림을 그리다
    '프라하의 노래와 음악을 위한 봄 축제', ((c)Richard Fuxa Foundation)
    무하는 체코로 돌아가자마자 합스부르크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염원하는 작품활동에 돌입한다. 프랑스에서 온 상업 미술 작가로 체코 미술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는 무상으로 포스터들을 제작하고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돕는다. 1세계대전 종전 후,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을 한 뒤부터는 국가의 국장, 우표, 지폐, 공공 기관의 제복까지 모두 무상으로 디자인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를 국가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슬라브 서사시> 연작이었다.
  • #9. 체코의 역사, 슬라브 서사시를 20년 만에 완성하다
    #9. 체코의 역사, 슬라브 서사시를 20년 만에 완성하다
    'By one's own strength I, 1911', (Photo by Fine Art Images/Heritage Images/Getty Images)
    <슬라브 서사시> 연작은 국가 건립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를 담아낸 20개의 작품으로 무려 20여 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체코의 역사와 민족애를 담은 작품답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포스터와 달리 웅장한 화풍을 보여준다. 그의 노력은 1921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60만 명의 관람객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도 잠시, 나치군의 점령과 동시에 그는 애국 인사로 찍혀 심문을 받게 되고 영향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1948년 공산화된 체코 정권에서는 ‘무하’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슬라브의 역사를 기록했던 그였으나 그의 그림은 문서 보관소 지하 창고에서 사람들로 잊혀간다. 흔한 장식 주의 화가로, 광고나 삽화를 그린 흔한 포스터용 그림을 그린 작가로 격하시켰다. 체코인들 사이에서도 그가 주목받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가 되어서였다.
  • #10. 알폰스 무하 展
    #10. 알폰스 무하 展
    프라하 국립 미술관에서 '슬라브 서사시'를 보고 있는 방문객의 모습. (Photo by AP)
    비록 지하 보관소에서 지상까지 오는 길은 멀고 험했으나 이후 무하는 체코 국민 화가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당대에도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현대에까지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무하의 아름다운 작품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이반 렌들'의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한 전시회로  2013년 프라하에서 첫 공개 된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뉴욕 등을 순회한 뒤 국내 최초로 마이아트뮤지엄의 개관 특별전을 통해 마련되었다. 판화와 유화, 드로잉 등의 작품 230여 점을 연대기에 맞춰 총망라한 전시회로 무하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볼 수 있을 예정이다. 
알폰스 무하 展  

기간 2019년 10월 24일(목)~2020년 03월 01일(일)

시간 [화~일] 10:00 ~ 20:00 (입장 마감 19:00)

장소마이아트뮤지엄

가격 일반(19세 이상) 15,000원 / 청소년(8세-19세 미만) 12,000원 / 어린이(만3세-7세) 10,000원 

 

* 참조 <알폰스 무하_매혹적인 선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장우진, (책우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