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9년 10월 21일 14시 56분 KST

적법 이주노동자 3만명 ‘미등록 체류자’ 만든 고용허가제

고용센터 실수로 미등록 체류자가 된 경우도 있다.

한겨레
네팔,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2019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 3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일터를 떠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ㄱ씨는 2015년 2월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의 소개로 새 회사 면접을 보고 취직을 결정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정부가 허락한 ‘3개월’의 구직기간이 만료되기 하루 전이었다. 고용허가서를 받으려고 부랴부랴 고용센터를 찾았지만 담당 직원은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음날 고용센터를 방문해야 했던 ㄱ씨에게 돌아온 건 ‘고용 불허’ 통보였다. 허용된 구직기간을 단 하루 넘겼다는 이유였다. ㄱ씨는 아무 잘못 없이 미등록 체류자(불법체류자) 처지가 됐다.

이주노동자들의 입국과 고용을 관리하는 고용허가제의 까다로운 ‘사업장 변경’ 조건이 적법하게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을 미등록 체류자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기존 회사와의 근로계약이 끝난 날부터 한달 안에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해야 하고,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한 날부터 세달 안에 새 회사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센터의 ‘불성실’한 취업 알선에 매달려야 하는데, 하루라도 기간을 넘길 경우 ㄱ씨처럼 체류가 취소돼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올해 8월까지 사업장 변경 신청기간과 구직기간을 넘겨 미등록 체류자가 된 이주노동자는 2만8709명에 이른다. 사업장 변경 신청기간을 초과한 외국인 노동자는 2015년 3407명에서 올해 8월 4582명으로, 같은 기간 구직기간을 초과한 경우도 1205명에서 1215명으로 늘었다.

사업장 변경 과정에서 사업주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탓에 이주노동자 본인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ㄴ씨 역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한 뒤 기존 사업장과의 계약기간이 끝나 2016년 2월 다른 사업장과 계약을 맺었지만 2017년 7월 ‘체류 자격이 취소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새 고용주가 고용허가서 발급 등 행정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탓이다. 앞서 18일 고용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고의 없이 구직등록 기간을 넘긴 몽골 출신 노동자에게 적법한 체류 지위를 제공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수용한 바 있다. 인권위에 진정을 낸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와 고용센터의 실수로 구직기간인 3개월을 3일 넘겨 미등록 체류자가 됐다.

이주노동자가 구직기간 안에 서둘러 새 직장을 찾으려 해도, 새 직장 소개를 맡아야 할 고용센터의 불친절한 정보 때문에 구직이 여의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우즈베키스탄 출신 노동자 ㄷ씨는 고용센터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해당 공장이 돼지 소시지를 만드는 곳인 것을 알게 됐다. ㄷ씨는 율법상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이다.

한정애 의원은 “현재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 제한 조건이 너무 과도하고, 고용센터에서 구직 알선 과정이 소홀해 미등록 체류자를 만들고 있다”며 “이동 제한 조건을 완화하고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휴대폰이나 워크넷 등으로 구직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