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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8일 07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18일 14시 12분 KST

코미디 배우들은 우울하다

로빈 윌리엄스는 왜 그토록 코미디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까? 거기에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보다 위대한 배우로 존경 받고 싶었을 것이다. 출연작마다 오스카 후보에 오르는 그런 배우 말이다. 로빈 윌리엄스만한 배우가 오스카 따위에 연연했겠느냐고? 이런 질문은 당신이 배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상에 연연한다. 그들도 인간이다. 두 번째 이유. 코미디 연기는 지나치게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또 다른 코미디 배우를 예로 들어야 한다. 로빈 윌리엄스 이후 가장 위대한 코미디 배우인 짐 캐리 말이다.

로빈 윌리엄스가 죽었다. 자살이었다. 파킨슨 병 진단을 받은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그가 오랫동안 앓던 우울증을 파킨슨 병 진단이 심화시켰으리라는 추측들이다. 아마도 당신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로빈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영화들은 <미세스 다웃파이어>, <알라딘>, <굿모닝 베트남>같은 코미디 영화들이었을테니까. 그러나 오랫동안 로빈 윌리엄스의 궤적을 따라온 팬들이라면 아마 이렇게 읊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불안한 남자가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어..."라고 말이다. 왜냐고?

로빈 윌리엄스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으로서 경력을 시작한 남자다. 그의 경력은 곧 영화로 이어졌다. 그가 처음으로 제법 큰 규모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것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1980년작 <뽀빠이>부터였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미국 애니메이션의 아이콘, 시금치를 마시면 힘이 솟는 바로 그 뽀빠이 말이다. 그런데 로빈 윌리엄스의 어둠은 이미 그 시절부터 내부에서 자라고 있었다. 로빈 윌리엄스는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심각하게 마약에 중독돼있었다. 코카인 없이는 대중 앞에 나가서 스탠드 업 코미디를 하지도, 카메라 앞에 설 수도 없던 시절도 있었다. 윌리엄스가 계속 그렇게 살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80년대 중반 즈음에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신인배우 로빈 윌리엄스 사망'이라는 기사를 보게 됐을는지도 모른다.

로빈 윌리엄스가 재활원에 기어들어가 마약을 끊게 된 계기는 오랜 친구였던 코미디언 '존 벨루시'의 죽음이었다. 존 벨루시는 <블루스 브라더스>로 80년대 최고의 코미디 배우 중 한 명으로 손꼽히던 배우였다. 그러나 그는 <아툭>이라는 영화의 촬영을 앞두고 LA의 샤토 마몽 호텔에서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죽었다. 벨루시가 죽기 전 같이 있었던 배우가 로빈 윌리엄스였다. 윌리엄스는 벨루시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스스로 재활원에 걸어들어가 마약을 끊었고, 1987년작 <굿모닝 베트남>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놀라운 부활의 노래였다. 그리고 로빈 윌리엄스의 경력은 <굿 윌 헌팅>으로 1998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으면서 절정에 올랐다. 그런데 그 이후는?

로빈 윌리엄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코미디로부터 멀어지고 싶어했다. 2002년 <스토커>, <인썸니아>, 2004년작 <파이널 컷> 등 그는 계속해서 진지한, 아니, 놀라울 정도로 어두침침한 영화들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력은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았다고 해야겠다. 오히려 21세기 들어 로빈 윌리엄스를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영화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였다. 거기서 그가 맡은 테디 루즈벨트 역할은 그저 소박한 조연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그의 대표작으로 여전히 <굿모닝 베트남>,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과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꼽는다. 초기와 중기작들이다.

로빈 윌리엄스는 왜 그토록 코미디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까? 거기에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보다 위대한 배우로 존경 받고 싶었을 것이다. 출연작마다 오스카 후보에 오르는 그런 배우 말이다. 로빈 윌리엄스만한 배우가 오스카 따위에 연연했겠느냐고? 이런 질문은 당신이 배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상에 연연한다. 그들도 인간이다. 찍는 영화마다 오스카 후보에 오르는 메릴 스트립을 부러워하지 않는 배우는 없다. 두 번째 이유. 코미디 연기는 지나치게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또 다른 코미디 배우를 예로 들어야 한다. 로빈 윌리엄스 이후 가장 위대한 코미디 배우인 짐 캐리 말이다. 짐 캐리 역시 오랫동안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기 위해 도전해왔다. 커리어를 완전히 걸고 도전해 왔다. 그는 <마스크>, <덤 앤 더머>처럼 초창기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슬랩스틱 코미디를 멈추고 보다 진지한 영화에서 진중한 연기를 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성공을 거두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그가 출연한 보다 진지한 영화들의 리스트를 한번 보시라. <트루먼 쇼>(1998), <맨 온 더 문>(1999), <마제스틱>(2001), <이터널 선샤인>(2004). 영원히 할리우드의 신전에 남을 영화들이고, 짐 캐리는 영원히 할리우드의 신전에 남을 연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짐 캐리는 단 한번도 오스카를 받지 못했다. 아니, 오스카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심지어 <트루먼 쇼>, <맨 온 더 문>과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연기로 비평가들과 관객의 격찬을 받은 뒤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잡지 <버라이어티>는 <이터널 선샤인>의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짐 캐리는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의 가장 윗줄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짐 캐리는 역시 후보 지명에서 빠졌다. 함께 출연한 케이트 윈슬렛은 여우주연상 후보 지목을 받았다. 그 이후로 짐 캐리는 오스카를 거의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후보에라도 올랐더라면 아쉬움은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치고 비평가와 관객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번도 오스카 후보 조차 오른 적이 없다. 슬플 정도로 부당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짐 캐리는 그가 출연한 거의 모든 영화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어야 마땅하다. <트루먼 쇼>와 <맨 온 더 문>과 <이터널 선샤인>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는 <덤 앤 더머>와 <라이어 라이어>와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으로도 후보에 올랐어야 한다. 그건 거의 순수할 정도로 코미디의 본질에 근접한 연기였고, 지금 그런 연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대가는 짐 캐리가 거의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 영화들 속 짐 캐리를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니로의 전성기 시절 연기와 나란히 줄 세우기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거부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 모두 '진지한 연기'에 대한 어떤 환상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 연기는 거의 서커스에 가까울 정도의 기교가 필요한 분야다. 짐 캐리와 로빈 윌리엄스는 보다 진중한 역할들을 잘 해낼 수 있지만,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는 그렇지 않다. 최근 드니로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들을 본 적이 있나? 그는 위대한 배우지만 나는 그의 코미디 연기를 짐 캐리, 로빈 윌리엄스와 같은 줄에 도저히 세울 수가 없다. 하지만 드니로가 죽고 나면 우리는 그를 '위대한 연기의 신'으로 표현할 것이고, 짐 캐리가 죽고 나면 '가장 웃겼던 코미디의 신'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짐 캐리 역시 '위대한 연기의 신'이라는 타이틀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코미디 연기는 배우에게 훨씬 거대한 감정적 짐을 지운다는 점에서 '진지한 연기'보다 더 어려운 구석이 있다. 예전에 인터뷰했던 한 한국 배우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웃기는 연기는 스트레스가 훨씬 심해요.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는 카타르시스를 분출하게 되니까 오히려 촬영이 끝나고 나면 개운해져요. 그런데 웃기는 연기는 과연 관객들이 웃을까 아닐까...긴장을 계속 갖고 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많은 코미디 배우들은 우울증을 겪는다. 짐 캐리 역시 우울증을 겪었다. 그는 지난 2004년도에 CBS의 '60분'에 출연해 "꽤 오랜 기간 항우울제에 의존해서 지냈다. 약 덕분에 그나마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지난 2008년에는 우울증에 관한 책을 직접 쓴 적도 있다. 그러나 그가 완벽하게 우울증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니다. 2010년 그가 여배우 제니 맥카시와 이혼했을 때, 또다시 그는 재활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하고 나서 그가 실은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속편에 출연할 예정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여 년만의 속편이었다. 사실 로빈 윌리엄스는 절대 속편에 출연하지 않는 배우로 유명했다. 그러나 최근 로빈 윌리엄스에게는 가라앉은 경력을 재 점화시킬 한방이 필요했다(실제로 그는 출연 제의 고갈에 시달렸다고 알려졌다). 경력을 재점화하기 위해서는 그의 최고 성공작 중 하나였던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속편 출연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이 영화의 속편에 출연하는 걸 정말로 싫어했다.

짐 캐리도 마찬가지다. 그의 초기작이자 대표적인 화장실 코미디 영화 <덤 앤 더머>의 속편이 곧 개봉한다. 나는 짐 캐리가 왜 그토록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던 슬랩스틱 코미디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는지 잘 안다. 지난 몇 년간 그가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기억 나는가? 그의 경력은 실제로 조금씩 가라앉던 중이다. <트루먼 쇼>와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의 대본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 <덤 앤 더머>의 속편은 불가항력의 복귀다. 나는 정말이지 짐 캐리가 <덤 앤 더머> 속편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길 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