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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6일 07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08일 14시 12분 KST

종북과 친일의 덫

1960년 10월 12일 대낮에 일본의 제1야당 당수가 연설도중에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17세의 소년 야마구치 오토야(山口二矢)였다. 필자가 이 사건을 떠올린 것은 지난 12월 '신은미 토크 콘서트'에서 18세의 고교 3학년 학생이 사제 폭발물을 투척했다는 뉴스 때문이다. 물론 야마구치 사건처럼 본격적인 테러는 아니지만 많은 유사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부당한 압력이나 폭력으로 이를 위압하려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연말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1960년 10월 12일 대낮에 일본의 제1야당 당수가 연설도중에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17세의 소년 야마구치 오토야(山口二矢)였다. 당시 일본은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하던 시절이었고, 고교 중퇴 후 우익단체에 들어가 좌익 척결의 의지를 불태우던 야마구치는 대표적 진보정당인 일본사회당의 아사누마 이네지로(浅沼稲次郎) 위원장을 목표로 삼았다. 도쿄의 한복판에서 개최된 여야당 당수 합동 연설회에 참석한 야마구치는 아사누마의 연설이 시작되자 무대로 뛰어올라 품고 있던 칼로 단번에 그를 찔러 살해했다.

야마구치 소년은 조사과정에서 '좌익의 지도자 한사람을 쓰러뜨린다고 해서 금방 좌익세력이 저지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좌익 지도자들이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고, 선동자들의 감언에 부화뇌동하는 국민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각성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공포심을 조장하여 사람들의 언행을 위축시킨다고 하는, 테러행위의 전형적인 목적 그대로다.

필자가 이 사건을 떠올린 것은 지난 12월 '신은미 토크 콘서트'에서 18세의 고교 3학년 학생이 사제 폭발물을 투척했다는 뉴스 때문이다. 물론 야마구치 사건처럼 본격적인 테러는 아니지만 많은 유사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부당한 압력이나 폭력으로 이를 위압하려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연말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문체부 우수도서 2권 : 신은미와 박유하

2013년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신은미 씨의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도 토크 콘서트 사건 때문에 덩달아 문제가 되었다. '종북' 논란을 일으킨 사람의 책이 어떻게 우수도서가 되었느냐는 비판이 높아지자 급기야 국무총리가 12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선정절차를 재점검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에 편향된 시각으로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할머니들이 작년 6월 16일 판매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박 교수의 또 다른 책 '화해를 위해서'가 2006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데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논란이 커지자 문체부는 7월 22일 도서 내용과 선정 경위를 조사해서 문제점이 확인되면 우수도서 선정 취소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박 교수의 '화해를 위해서'는 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의 네 가지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제대로 된 비판은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지만 우리의 비판의 대부분은 그러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진단이다. 그리고 우리 내부의 경직된 선입관을 날카롭게 파헤쳐 보여주고 있기에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친일'이라는 비판을 유발했다.

필자는 박 교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 발상과 문제제기는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매학기 수업 때마다 학생들에게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세상에는 나와는 다른 생각도 존재함을 이해하고, 그러한 생각들을 알아보려 노력하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식 '몰아가기'가 우리 사회 병들게 해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유연한 발상을 가로막는 두 개의 덫이 있다. 바로 종북'몰이'와 친일'몰이'다. 건전한 비판과 마녀사냥식의 '몰아가기'는 분명 달라야 함에도 그것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굳이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매스컴과 인터넷, SNS를 활용하여 종북과 친일의 프레임을 덧씌우고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게다가 여야를 막론하고 종북과 친일의 프레임을 정쟁의 편리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2015년, 해방 70주년은 여전히 남북분단과 이념대립의 질곡에 빠져있고,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은 전례 없는 냉각 국면이다. 외교에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요체인데, 유연한 사고와 자유로운 주장이 위축되는 환경에서는 올해의 전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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