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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8일 10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18일 11시 59분 KST

삼성은 국민에게 진 빚을 기억이나 할까?

ASSOCIATED PRESS
In this June 23, 2015, Lee Jae-yong, vice chairman of Samsung Electronics Co., arrives to attend a press conference at the company's headquarters in Seoul, South Korea. A vote on combining companies in the Samsung empire is pitting South Korea’s richest family against small shareholders and foreign investors. Shareholders at Samsung C&T will vote Friday, July 17 on the proposed takeover of the company by another Samsung company, Cheil Industries. (AP Photo/Ahn Young-joon)

업데이트 : 2015년 7월18일 15:30 (기사 보강)

업데이트 : 2015년 7월18일 16:00 (기사 보강)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통과된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까?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맞서 얻어낸 승리? 대한민국 대표기업을 지켜낸 뿌듯한 순간?

조선일보는 18일자 사설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총동원”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연금과 국내 자산운용사, 기업들은 물론 “애국심에 호소하는 분위기 때문에” 삼성 편에 선 소액주주들까지 모두가 총동원돼 “삼성의 후계 제체 안정을 도와준 셈”이라는 얘기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이런 얘기다.

두 회사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안정적으로 그룹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번 합병 성공으로 이 부회장은 작년 5월 쓰러진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경영권을 승계(承繼)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부회장은 합병 삼성물산의 지분 16.5%를 확보해 국민연금(5.9%)보다 많은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또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4%를 통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도 강화했다. 지금까지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190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지분 4%를 확보하려면 8조원 가까운 돈이 필요하지만 이번 합병을 통해 이를 절감한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7월18일)

이번 합병의 본질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 정확하게는 ‘이재용 부회장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주들을 동원한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다음은 동아일보의 18일자 사설 중 일부다.

승계 문제가 아니었다면 두 회사가 굳이 합병에 나섰을지 의문이다. 이 부회장은 20대에 제일모직의 전신인 에버랜드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지배 주주가 됐고, 수조 원의 상장(上場) 차익도 얻었다.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인 그가 삼성전자 지분 4%를 가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쳐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지배력을 강화해 삼성 승계 지위를 굳히려다 엘리엇이라는 복병을 만난 게 이번 ‘합병 전쟁’의 본질이다. (동아일보 7월18일)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번 합병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며 합병 반대 활동을 벌여왔다. 엘리엇은 가혹하고 약탈적이기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벌쳐펀드다. (엘리엇의 실체에 대해서는 시사in의 이종태 기자가 자세히 정리한 이 기사를 참고하자.)

그러나 애초부터 이번 합병을 둘러싼 싸움의 본질은 ‘기업 사냥꾼 vs 국민 기업’이 아니었다. 한 경제블로거가 지적했듯 이건 “이재용 대 엘리엇 & 삼성물산 주주”의 싸움이었다.

더 넓게 보자면, 이번 싸움에는 일반 국민들도 연루되어 있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으로 운용되는 국민연금이다. 합병이 성사되기 전까지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다. 국민연금은 절차상 논란과 비판을 뒤로한 채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손창완 연세대 교수는 지난달 한겨레에 쓴 칼럼에서 “이번 합병이 부적절하다면 그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국민연금에 돈을 위탁한 국민”이라고 주장했다.

최흡 조선비즈 증권부장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손해를 볼까 두려워” 삼성물산 주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상황에서 “입장상 곤란한 ‘국민의 돈’ 국민연금만이 많은 지분을 들고 있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합병은 한국 자본시장을 후퇴시킨 사건으로 해석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이 삼성물산 합병을 거의 일방적으로 옹호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조선비즈 데스크(고참급 기자)들의 관전평을 들어보자.

김기성 금융부장은 “결과적으로 삼성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의 자본주의가 한걸음 후퇴했다”고 지적했고, 정재형 경제정책부장은 “이번 삼성물산의 사례는 론스타-외환은행 사건처럼 한국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또 한번 후퇴시킨 것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 [조선비즈데스크 독해법] 삼성-엘리엇의 합병분쟁이 남긴 것 (조선비즈)

김주현 부동산유통부장는 이번 사건을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엘리엇의 공세에 맞서 한국 사회 상당수는 삼성을 중심으로 애국주의에 빠졌다.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경제가 악화될 것이라는 환상이다.

(중략)

사실 이번 사태의 대부분 책임은 삼성에 있다. 삼성이 합병에 찬성해 달라며 스스로 밝힌 것처럼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에 무심했기 때문이다. ‘대주주’의 이익을 주주의 이익과 동일시하며 오너 일가에 유리한 선택을 모두를 위한 선택으로 정당화했다. (조선비즈 7월17일)

한편 외신들은 이번 합병에 대해 냉소적인 평가를 내놨다.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인 맷 레빈은 16일(현지시간) '삼성은 주주들이 케이크를 먹고 투표하길 원했다'라는 사설을 통해 이번 합병안 통과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중략)

이어 레빈은 "삼성은 이번 합병과정에서 제시된 합병비율이 시장가격에 의해 결정된 합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삼성은 최저 비용으로 양사를 합병할 수 있는 타이밍을 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저렴한 비용을 투자한 케이크를 배달하면서 승리를 얻어냈지만 결론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한 합병일 뿐 주주들에게는 이익이 없다는 주장이다. (매일경제 7월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주총회에서 두 회사 합병안이 통과된 데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각) 칼럼을 통해 “1990년대 후반 아시아시장에 투자해 본 사람이라면 이번 일은 놀랄 일도 아니다”라면서 한국에서는 “거인(삼성)이 언제나 승리한다”고 전했다. (조선비즈 7월18일)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쓴 칼럼에서 “재벌기업들은 국민에게 진 빚을 기억하고는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경영은 허술하게 해놓고 애국·온정주의에 기대 위기를 넘기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소개한 조선일보 사설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삼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한민국 전체가 삼성을 위해 뛰어줄 것이라고 낙관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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